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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정보/시사

[人터view] 권력형 부동산 투기 100년의 역사

by 체커 2021.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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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LH에서 시작된 부동산 투기 의혹이 다가오는 재보궐선거와 맞물려, 청와대·국회 등 공직사회 전반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공직자가 직위를 이용해 사익을 꾀한 사례가 처음이 아님에도, 국민 분노는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는데요.

사람, 공간, 시선을 전하는 인터뷰에서 분노의 이유와 더불어, 일제강점기부터 100여 년간 이어진 권력형 부동산 투기의 역사를 살펴봤습니다.

[영상리포트 내레이션]

일제가 1910년 대한제국 강점 직후 가장 먼저 한 일이 무엇이었을까?

한반도 토지를 점유하고, 식민지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벌인 토지조사사업이었다.

국유지는 물론 사유지까지 강제로 빼앗아 총독부에 편입시켰다.

개발정보는 일본인들에게만 미리 알려 이익을 독점하게 했다.

해방 후, 한반도 남쪽에 주둔한 미군은 일제가 점유하던 토지 등을 몰수했다.

당시 귀속된 재산은 남한 총자산의 약 80%에 이르는 엄청난 양이었다.

많은 국민이 이를 국유화해 경제개발에 사용하길 바랐지만, 미군정은 친미세력을 육성한다며 이 재산을 헐값에 민간에 넘겼다.

이를 '귀속재산 불하(拂下)'라고 하는데, 선정과정이 공정하질 않아 부의 재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장상환 / 경상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 (귀속재산은) 일제시대하고 미군정의 관련자들, 관리나 상공업 자산가층, 정권과 이렇게 밀착해 있는 사람들이 불하받았다 이렇게 볼 수 있겠죠.]

이 과정에서 결탁이 난무하고, 부패가 만연했다.

인플레가 심해 실질 매입가가 시가의 10%에 불과한 경우도 허다했다.

그마저도 15년에 나누어 낼 수 있게 해주었다.

미국의 후원으로 성립한 이승만 정권은 이 정책을 1958년까지 이어갔다.

이 시기 불하 총액은 당시 돈으로 약 44억 3,700만 원.

부동산 등이 21억 7,600만 원, 기업체가 22억 4,500만 원이었다.

지금도 영향력이 큰 재벌의 모태가 이때 불하받은 기업인 경우가 많다.

[장상환 / 경상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 귀속재산의 불하는 일제와 미군정 관련자들에게 특혜적으로 불하된 것으로, 그 이후에 이어진 부동산 투기의 출발이고, 그것이 권력을 끼고 하는 그런 부동산 투기, 정경유착의 출발이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6·70년대는 고도성장기로 매년 30만 가까운 인구가 서울로 유입됐다.

박정희 정권은 포화상태에 이른 강북을 대신하고, 북한의 재침에 대비할 새로운 도시를 건설한다.

지금의 강남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이다.

그런데 이면엔 다른 목적이 있었다. '남서울(강남)개발계획' 발표(1970년 11월 5일) 9개월 전, 당시 서울시 도시계획국장 윤진우는 청와대 경호실장 박종규의 지시로 강남 일대 땅 24만여 평을 비밀리에 매입한다.

그중 18만여 평을 되팔아 20억 가까운 자금(현재가치로 약 5천억 원)을 마련했는데, 이 돈이 박정희 정권 연장을 위한 정치자금으로 쓰였다고 한다.

투기를 막아야 할 자들이 직접 투기판에 뛰어든 것이다.

한쪽에선 국유지였던 옛 황실 땅 상당수가 어느 순간 사유지로 바뀌어 있었다.

[전우용 / 역사학자 : 군사정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민심의 향방이 아닙니다. 군심(軍心)입니다. 자기가 쿠데타를 했기 때문에 다른 군인도 쿠데타를 벌일 수 있다고 하는 두려움이 있죠. 그걸 막기 위해서는 군인들한테 특혜를 줘야 했어요. 그래서 박정희 정권기에는 주로 왕실 소유지라든가 다른 국유지들을 군 장성과 그 가족에게 특혜 불하하는 것이 굉장히 일반적이었어요.]

권력자와 그들 곁에서 개발정보를 얻은 사람들로 인해 강남 땅값은 천정부지로 올라갔다.

1963년부터 1979년까지 중구 신당동이 17배 오르는 동안, 강남구 학동(지금의 논현2동)은 무려 1,333배나 뛰었다.

'복부인'이란 말이 등장한 것도 이 무렵이다.

투기로 인한 지가 상승은 주택과 건물가격을 올리고 주거비와 임대료 상승을 부추긴다.

임대료가 오르면 생산비가 오르고 이는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내수경기는 위축되고, 임금가치는 하락하여 결혼과 출산을 어렵게 만든다.

그사이 빈부격차는 더욱 심해진다.

임대나 경작을 위한 토지 이용권은 부정되고, 지주의 소유권만이 절대적 가치였던 지난 100년.

그 안엔 공익을 위해 써야 할 권한을 사적으로 유용한 자들이 있었다.

권한을 쥔 공직자가 투기꾼으로 '흑화한' 사례는 이후 정부과천청사와 목동 신시가지개발, 1·2기 신도시와 세종시 등을 거쳐, 3기 신도시까지 이어지고 있다.

[장상환 / 경상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 (LH 사태가) 개인 일탈의 문제라면 처벌 강화와 부당이득을 환수하고 그걸 강화하면 되겠지만, 구조적인 그런 것이고 반복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 제도를 개선해야 하는 것이죠. (투기는) 보상 가격을 높게 받을 수 있다는 기대 때문에 가능한데, 그 기대 자체를 없애버리는 그런 제도 개선을 통해서 이걸 막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다. 저는 권력과 돈으로 할 수 없는 일이 많은 사회, 이것이 선진민주사회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여기에 하나 더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다.

그들에게 분노하는 우리는 어떤 정의를 상정하고 있는가?

[전우용 / 역사학자 : (권력형 부동산 투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에요. 내내 계속 지속돼 왔던 거예요. 어떤 정보를 나눠 갖는 사람들 네트워크가 있었고, 이 네트워크가 견고했기 때문에 안 깨진 거라고 저는 생각을 해요. 대다수의 공적 권리를 침해하고 일부의 사적 권리들만 인정하겠다는 거거든요. 그런데 그런 발상을 아직도 우리는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요. '나도 갖고 싶은데 왜 너만 갖느냐'라고 하는 그런 시기심, 질투심이지, 공적 재원을 투입해서 얻어지는 부분들을 사유화하는 것 자체가 불의하다고 하는 근본적인 불의성(不義性)에 대해서 분노하고 있는 것은 아직 아닌 것 같다는 겁니다.]

사익을 위한 정의(情誼)가 공익을 위한 정의(正義)를 무너뜨려 온 역사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제보/ buttoner@ytn.co.kr

 

도움/ 장상환 경상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전우용 역사학자, 故 손정목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서울역사아카이브, 서울시립대 중앙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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