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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논란거리/사회

표현의 자유와 기본권 충돌에 대한 고찰(이병태 대통령 직속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의 글)

by 체커 2026.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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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 그리고 야구 응원 구호]
나의 최근 고등학교 야구 경기의 응원 구호 논란에 대한 이 사회의 반응과 처리방향에 대한 비판적 글이 언론들이 보도하며 논란이 되고 있다.
내 의견의 핵심은 "표현의 자유"다. 이는 인간의 보편적 기본권 중에 하나다.
나는 표현의 자유는 다수가 동의하지 않는 생각을 처벌의 두려움 없이 말할 수 있는 기본권이라고 기회 있을 때마다 주장해왔다.
표현의 자유는 "옳고 바른" 말을 할 권리가 아니라 틀리고 엉뚱하고 거짓된 말도 사회가 허용하라는 기본권이다.
그래서 최근 정보통신법 개정안도, 공직선거법상 허위 처벌도, 선거운동의 제약도 모두 반대해왔다.
이번 글도 다르지 않다. 그렇다. 
전에 어떤 정치인이 말한 것처럼 서울 한복판에서 김일성 만세를 외쳐도 허용되어야 한다. 그게 기본권이다.

김일성 만세가 옳고 우리가 동의해서 발언의 기본권을 옹호하는 게 아니다.
소수의 미친 소리는 다수의 진리에 의해 정화된다. 그리고 누가 이런 미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아는 것이 사회가 더 안전하고 이들의 과격화를 막을 수 있다.
나는 광주 민주화 운동의 참여자나 희생자가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다고 지금도 굳게 믿고 있다.
이것에 동의한다면 민주주의의 인류 보편적 천부인권인 표현의 자유를 부인해서는 안된다.
우리 스스로의 기본권을 지킬 때만이 이 사회는 진정한 민주 사회가 된다. 그리고 기본권이 지키는 것이 광주 "민주화" 운동을 완성하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의 구호가 이니라 그들의 처벌이 광주민주화 운동의 조롱과 폄훼라고 믿는다.
표현의 자유가 오늘날처럼 당연한 인간의 기본권(인권)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수많은 사상가들의 투쟁과 역사적 시민 혁명이 있어왔다.
도대체 "천부인권"이란 말이 무엇인가? 우리가 태어나면서 하늘 (신)이 준 것이라 인간이 부인하면 안된다는 뜻 아닌가?
존 밀턴의 <아레오파기티카> (1644년)는 정부의 출판 사전 검열 제도를 비판하며, 검열 없는 출판의 자유를 주장했다.
그는 진리와 허위가 자유롭게 경쟁하게 대버려두면 결국 진리가 이긴다는 '진리의 자정 능력(시장 이론)'을 제시하며 사상적 기초를 닦았다.
이것이 표현의 자유의 핵심이다. 검열이 아니라 "진리의 자정 능력"을 믿는 것이다.
영국 권리장전 (1689년)은 명예혁명의 정신을 살려 비록 의원들에게만 국한된 자유였지만, 국가 권력이 개인의 표현을 함부로 처벌할 수 없다는 법적 선례를 남겼다.
18세기 후반에 이르러 표현의 자유는 국가가 침해할 수 없는 '천부인권(하늘이 준 인권)'으로 헌법에 명문화되기 시작했다.
프랑스 혁명의 결과물프랑스 인권선언 (1789년) 제11조는 표현의 자유를 인간의 가장 소중한 권리 중 하나로 선언했다.
"사상과 의견의 자유로운 교환은 인간의 가장 소중한 권리 중 하나이다. 따라서 모든 시민은 자유롭게 말하고, 쓰고, 인쇄할 수 있다."
미국 수정헌법 제1조 (1791년) 도 표현·언론·종교·집회의 자유를 국가가 법률로써도 제한할 수 없도록 강력한 브레이크를 걸었다. 이후 전 세계 언론·표현의 자유의 상징적인 이정표가 되었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1859년) 표현의 자유가 왜 절대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지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정리했다.
설령 99명의 의견이 같고 단 1명의 의견만 다르다 하더라도, 사회가 그 1명의 침묵을 강요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보았다.
억압받는 그 '소수 의견'이 진리일 수도 있고, 설령 오류(틀린 말)라 하더라도 그것과 논쟁하는 과정에서 '다수 의견(진리)'이 단순한 교리가 아니라 살아있는 지식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세기들어 표현과 언론의 자유는 인간의 보편적 권리로의 확립되었다.
세계인권선언 (1948년)은 차례의 참혹한 세계 대전을 겪은 후, 인류는 표현의 자유가 억압될 때 독재와 폭력이 지배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UN이 채택한 세계인권선언 제19조는 국경을 넘어 모든 인간이 누려야 할 보편적 권리로 이를 선언했다.
"모든 사람은 의견과 표현의 자유를 가질 권리가 있다. 이 권리는 간섭받지 않고 의견을 가질 자유와, 국경에 관계없이 어떤 매체를 통해서도 정보와 아이디어를 추구하고 받고 전파하는 자유를 포함한다."
이런 표현의 자유의 의미와 원칙을 이해한다면 우리가 가질 자세는 다음과 같다.
이번 응원 구호가 적절했는지는 사람 마다 다를 것이다. 그것이 부적절 했다면 비판하면 된다. 그 비판도 표현의 자유다. 
하지만 발언을 근거로 "처벌"은 기본권의 부인이다.
그래서 성역의 위험성을 거론했다.
 이 발언이 처벌 받아야한다는 기본권의 부정은 광주 "민주화" 운동이 추구했던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된다.
기본권이 지켜지지 않는 사회는 민주적 사회 아니다.
그 기본권의 예외인 엄벌의 욕구는 사상의 성역화에서 출발한다. 그것이 인물이든 종교든 역사든 매한가지다.
※ 참고로 우리 사회에서 가장 흔하게 부정되는 기본권이 표현의 자유와 사유 재산의 재산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병태 씨의 페이스북 글을 읽고 정리한 생각

최근 이병태 씨가 작성한 페이스북 글을 읽으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표현의 자유에 대한 글이라고 생각했지만, 내용을 하나씩 검토하다 보니 논의의 핵심은 단순히 표현의 자유 자체가 아니라 표현의 자유와 다른 헌법적 가치가 충돌할 때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이번 글은 그동안의 검토 내용을 순서대로 정리한 기록입니다.


1. 논의의 출발점

이병태 씨의 글의 핵심 주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핵심이며, 거짓말이나 틀린 말, 심지어 불쾌한 말까지도 보호되어야 한다. 따라서 배재고 응원구호를 이유로 학생을 징계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를 매우 강하게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이 글 전체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2. 처음 가졌던 의문

글을 읽으며 가장 먼저 들었던 의문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표현의 자유는 타인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보장되는 권리 아닌가?

대한민국 헌법은 표현의 자유를 중요한 기본권으로 인정하고 있지만, 동시에 다른 기본권 역시 함께 보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표현의 자유가 무조건 우선하는 권리인지에 대해 자연스럽게 의문이 생겼습니다.


3. 철학과 실정법은 구분되어야 합니다.

이병태 씨는 글에서 존 밀턴, 존 스튜어트 밀, 미국 수정헌법 제1조, 세계인권선언 등을 인용하며 표현의 자유의 역사와 철학을 설명합니다.

이러한 내용은 분명 표현의 자유의 철학적 정당성을 설명하는 자료입니다.

그러나 글의 결론은 철학의 소개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결국 글은

학생들의 징계는 잘못되었다.

라는 현재의 사건에 대한 법적·정책적 결론을 제시합니다.

즉, 형식은 철학을 설명하는 글이지만 실제 목적은 특정 사건에 대한 평가와 정책적 주장을 담고 있는 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4. 배재고 응원구호 사건의 성격

이번 사건에서 문제가 된 것은 단순히 개별 단어가 아니었습니다.

각 단어를 따로 떼어놓고 보면 특별한 문제가 없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해당 표현은 이미 우리 사회에서 특정한 역사적·사회적 의미를 갖는 조합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그 맥락 속에서 상대를 조롱하는 응원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즉, 문제는 단어 자체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형성된 의미와 사용된 맥락에 있었습니다.

또한 이번 사건은 국가의 형사처벌이 아니라 스포츠 협회의 경기 운영 규정과 스포츠맨십에 따른 징계였습니다.

이 점 역시 일반적인 표현의 자유 논쟁과는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5. 기본권 충돌이라는 문제

이번 논의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부분은 바로 기본권 충돌입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표현의 자유뿐 아니라

  • 인격권
  • 명예권
  • 행복추구권
  • 교육의 목적
  • 공동체 질서

등 다양한 기본권과 헌법적 가치를 함께 보호합니다.

현실에서는 이러한 권리들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따라서 헌법은 어느 하나의 기본권이 항상 절대적으로 우선한다고 보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사건에서는 각 권리가 얼마나 침해되는지, 공익은 무엇인지 등을 종합적으로 비교하여 조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충돌을 구체적으로 해결하는 역할을 민법, 형법, 행정법 및 판례가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표현의 자유는 중요한 기본권이지만 유일한 기본권은 아닙니다.


6. '성역화' 주장에 대한 의문

이병태 씨는 글에서 5·18 민주화운동이 성역화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저는 오히려 다른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과연 특별법이 먼저 만들어져 성역이 형성된 것일까요.

아니면 오랜 기간 지속된 역사 왜곡과 허위사실 유포,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공격이 반복되었기 때문에 그러한 특별법이 만들어진 것일까요.

만약 후자가 사실이라면, 특별법은 성역을 만들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 반복되는 권리침해를 막기 위한 사회적 대응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존재할 수 있지만, 적어도 역사적 맥락은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7. 가장 중요한 의문

이번 글을 검토하면서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모든 논의가 정리되었습니다.

왜 이번 사건에서는 표현의 자유가 다른 헌법적 가치보다 우선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글에는 충분히 제시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표현의 자유의 역사와 중요성은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 스포츠맨십
  • 교육 목적
  • 상대방에 대한 존중
  • 협회의 자율규제
  • 다른 기본권

보다 왜 표현의 자유가 우선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증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8. 이병태 씨가 답해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

결국 이번 글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다는 점에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는 표현의 자유와 다른 헌법적 가치들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 사건에서는 표현의 자유가 우선해야 하는지, 그 기준은 무엇입니까?

이 질문은 표현의 자유를 부정하는 질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표현의 자유를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설명해야 하는 논증의 핵심입니다.


진리의 자정능력은 실제로 작동하는가에 대한 의문

5·18 사례를 중심으로 한 표현의 자유 논의의 확장

이 글은 “진리의 자정능력”이라는 개념이 현실에서 얼마나 작동하는지에 대해, 5·18 민주화운동 관련 역사 인식을 사례로 들어 생각을 정리한 기록입니다. 특정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남겨두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1. 문제 제기의 출발점: 자정능력에 대한 직관적 의문

일반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논의에서는 “진리의 자정능력” 또는 “진리의 시장”이라는 개념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는 자유로운 발언과 토론 속에서 결국 진실이 드러나고, 거짓은 설득력을 잃게 된다는 생각에 기반합니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이러한 구조가 항상 명확하게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2. 5·18 민주화운동 사례에서 나타나는 인식의 분화

예를 들어 5·18 민주화운동의 경우를 보면 다음과 같은 역사적 흐름이 존재합니다.

  •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기에는 특정 사건이 제한적으로 보도되거나 왜곡된 방식으로 전달된 바 있음
  • 이후 민주화 과정에서 공식 조사와 재평가가 이루어지며 역사적 명칭과 의미가 재정립됨
  • 관련 법적·제도적 보호 장치가 마련되면서 국가 차원의 공식적 평가가 확립됨

이러한 과정은 일정 부분 “사회적 사실의 정리”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오늘날에도 해당 사건을 둘러싸고 서로 다른 해석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 공식 역사 서술을 따르는 입장
  • 다른 해석이나 의문을 제기하는 입장

이와 같은 다양한 서사가 공존하는 상황이 나타납니다.


3. 자정능력 개념에 대한 의문

이러한 현실을 보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자연스럽게 발생합니다.

진리의 자정능력은 실제로 사회 전체를 하나의 합의된 진실로 수렴시키는가?

혹은

특정 역사적 사안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지속적으로 공존하는 것이 오히려 일반적인 현상은 아닌가?

특히 정치적·이념적 영역에서는 이미 정리된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해석이 유지되는 경우가 관찰될 수 있습니다.


4. 또 다른 해석 가능성: 자정과 비자정의 충돌 구조

이러한 상황을 단순히 “자정능력이 작동한다 / 작동하지 않는다”로 구분하기보다는, 다음과 같이 볼 수도 있습니다.

  • 한쪽에서는 역사적 조사, 교육, 제도 등을 통해 사실을 정리하려는 “자정의 흐름”
  • 다른 한쪽에서는 기존 서사나 정치적 해석을 유지하려는 “대항 서사”

이 두 흐름이 동시에 존재하면서 충돌하는 구조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사회는 하나의 진실로 수렴하기보다는, 서로 다른 해석 체계가 공존하는 상태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5. 표현의 자유 논의와의 연결

이 문제는 표현의 자유 논의와도 연결됩니다.

“진리의 자정능력”이 충분히 작동한다고 본다면, 자유로운 발언과 토론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오류를 줄이고 진실에 가까워진다는 전제가 성립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서로 다른 역사 인식이 지속적으로 존재한다면, 다음과 같은 추가 질문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 자유로운 표현만으로 충분한가
  • 혹은 교육, 제도, 법적 판단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 또는 어느 수준까지 표현을 허용할 것인가

이 지점은 단일한 답을 갖기보다는 여러 관점이 공존하는 영역으로 볼 수 있습니다.


6. 정리

결국 이 논의는 다음과 같은 문제로 수렴합니다.

  • 진리의 자정능력은 실제로 사회 전체에서 일관되게 작동하는가
  • 혹은 특정 영역에서는 제한적으로 작동하거나 다른 요인들과 충돌하는가
  • 그리고 이러한 현실은 표현의 자유 이론을 어떻게 보완하거나 재해석해야 하는가

이 질문들은 하나의 결론으로 단정되기보다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상태로 남겨두는 것이 더 적절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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