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교토 애니메이션 제작사에서 벌어진 '묻지마 방화' 사건의 용의자가 범행 동기에 대해 '소설을 훔친데 불만을 품었다'고 밝혔다.
외교부와 현지 언론에 따르면 지난 18일 교토시 후시미(伏見)구 모모야마(桃山)에 있는 '교토애니메이션' 3층 스튜디오에서 방화 사건이 일어나 33명이 사망했다. 이 곳에서 근무하던 30대 한국 여성인 한 명도 중상을 입고 병원 치료 중이다.
화재 현장 근처에서 체포된 방화범은 40대로, 경찰에 "제작사가 소설을 훔쳐 불을 질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경찰이 용의자의 신원을 구체적으로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 '방화사건 용의자는 한국인'이라로 특정한 근거없는 유언비어가 돌고 있다.
현지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에서 "방화는 한국인의 습성", "최근 한일 관계를 고려했을 때 계획된 조직적 범행일 가능성도 있다"는 등의 내용이 급속히 퍼지면서 혐한 감정을 부추기고 있다.
해당 용의자는 방화를 저지른 후 약 100m 떨어진 인근 지하철로 도주하다 경찰에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소연 기자 nicksy@mt.co.kr
일본의 애니메이션 제작사에서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해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이곳에 근무한 한국인 여성도 중상을 입고 병원치료중입니다.
빠른 쾌유 바랍니다.
이런 소식에 관련 뉴스의 댓글에도 빠른 쾌유를 비는 댓글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일본 경찰이 용의자를 체포하였는데 용의자는 40대로 제작사가 소설을 훔쳐서 방화했다는 진술까지 나왔는데.... 방화사건의 용의자가 한국인이라는 유언비어가 돌고 있다고 하네요..
오히려 피해자쪽에 있는데 말이죠..
관동대지진때 조선인이 우물에 독풀었다고 조선인을 무차별 공격한 일본인들의 후예여서 그런건지... 한국에 대해 일본이 경제보복을 하고 있는 상황에 도움을 주고자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일본은 믿을만한 곳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것 아닌가 생각도 해 봅니다.
일본사회와 일본인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이미 전례가 있었으니....
관련링크 : 간토대지진(관동대지진, 위키백과)
1923년 도쿄 일원의 간토 지방은 지진으로 인하여 궤멸적인 피해를 입었고, 흉흉해진 민심 덕분에 일반인들 사이에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이 싹트는 가운데, 내무성은 계엄령을 선포하였고, 각 지역의 경찰서에 지역의 치안유지에 최선을 다할 것을 지시하였다.
그런데, 이때 내무성이 각 경찰서에 하달한 내용 중에 "재난을 틈타 이득을 취하려는 무리들이 있다. 조선인들이 방화와 폭탄에 의한 테러, 강도 등을 획책하고 있으니 주의하라"라는 내용이 있었다. 이 내용은 일부 신문에 보도되었고 보도내용에 의해 더욱더 내용이 과격해진 유언비어들이 신문에 다시 실림으로써 "조선인들이 폭도로 돌변해 우물에 독을 풀고 방화약탈을 하며 일본인들을 습격하고 있다" 라는 헛소문이 각지에 나돌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지진으로 인하여 물 공급이 끊긴 상태였고, 목조 건물이 대부분인 일본의 특징 때문에 일본인들은 화재를 굉장히 두려워하였으므로, 이러한 소문은 진위여부를 떠나 일본 민간인들에게 조선인에 대한 강렬한 적개심을 유발하였다. 이에 곳곳에서 민간인들이 자경단을 조직해 불시검문을 하면서 조선인으로 확인되면 가차없이 살해하는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죽창이나 몽둥이, 일본도 등으로 무장하였고, 일부는 총기로 무장하기도 하였다.
우선 조선식 복장을 한 이는 바로 살해당하였으며, 학살 사실을 알고 신분을 숨기기 위해 일본식 복장을 한 조선인들을 식별해 내기 위해서 조선인에게 어려운 일본어 발음 한국어에 없는 어두유성음 및 종종 정확하게 발음되지 않는 장음 발음(撥音)등으로 이루어진) 「十五円五十銭じゅうごえんごじっせん」(쥬고엔 고주센)을 시켜보아 발음이 이상하면 바로 살해하였다. 예를들어 '쥬고엔 고쥬센'을 일본어가 어눌한 발음의 '츄고엔 고쥬센'으로 발음하는 것이다. 이 때, 조선인뿐만 아니라, 중국인, 류큐인, 외자 성을 강제당해 조선인으로 오인받은 아마미 제도 출신, 지방에서 도쿄로 와 살고 있었던 지방의 일본인(특히 도호쿠 출신)들도 발음상의 차이로 조선인으로 오인받고 살해당하는 등, 자경단의 광기는 상상을 초월할만큼 잔악했다.
1923년 간토 대지진의 조선인 학살
일부 조선인들은 학살을 피해 경찰서 유치장으로까지 피신하였으나, 일부 지역에서는 경찰서 안까지 쳐들어와 끄집어 내어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경찰은 학살사실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거나, 소극적으로 대응하였으며, 오히려 조선인을 조직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던 야쿠자 등 비공권력 범죄 집단의 일부가 조선인을 숨겨주는 일이 있었다. 조선인 학살과 더불어 사회주의자, 아나키스트, 인권운동가, 반정부 행위자 등으로 경찰에 요주인물로 등록되어 있던, 주로 좌파 계열의 운동가에 대한 학살 사건도 동시에 진행되었다.
치안 당국은 "조선인들이 폭동을 저지르려고 한다"는 소문이 헛소문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혼란 수습과 질서 회복의 명분하에 자경단의 난행을 수수방관하였고, 일부는 가담, 조장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점차 자경단의 만행이 도를 넘어서 공권력을 위협할 정도가 되어, 그제서야 개입하였으나, 이미 수많은 조선인들이 학살당한 후였다. 자경단의 살상 대상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으며, 상당수는 암매장되었다. 학살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에는 도쿄에 흐르는 스미다 강과 아라카와 강은 시체의 피로 인해 핏빛으로 물들었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최종적으로 유언비어를 공식확인하였으나, 피해자의 수를 축소 발표하고, 자경단 일부를 연행,조사하였으나, 형식상의 조치에 불과하였으며, 기소된 사람들도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무죄 방면되었다. 학살 사건으로 인한 사법적 책임 또는 도의적 책임을 진 사람이나 기구는 전혀 없었다.
일본인 요시노 사쿠조는 그의 저서 『압박과 학살』에서 2534명으로, 김승학은 『한국독립운동사』에 피해자가 6066명이라고 적었지만, 그에 비해 당시 일본정부의 추산은 233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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