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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도움거리/일반

누가 현재의 '전국민 건강보험'을 만들었나

by 체커 2022.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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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발한 소셜미디어 활동으로 잘 알려진 역사학자 전우용 전 교수는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건강보험에 대한 글을 올렸다. 전우용은 “현재의 국민 건강보험 제도는 박정희가 준 ‘선물’이 아닙니다. 우리 국민들 자신이 살인적 폭력과 최루탄에 맞서 싸워 만든 제도"라고 주장했다. 일부에서 한국 건강보험제도의 시초가 박정희라는 주장을 하자 이를 반박하는 글을 올린 것이다.  이 글은 14일 현재 1500여회 페이스북에 공유됐다.

전우용은 민정당 노태우 후보가 1987년 대선 당시 '전국민 의료보험 혜택'을 공약으로 내세운 이유는 이런 공약이 없으면 뜨거웠던 6월항쟁의 민주화 열기를 가라앉힐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전국민 건강보험이 사실상 6월항쟁의 결실이라고 보는 것이다. 한편 전우용의 주장이 틀렸다는 반론도 나온다. 전국민 의료보험은 전두환 대통령이 도입을 결정했으며 노태우는 그 결정을 따랐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누가 현재의 전국민 건강보험 제도를 만들었을까. 

박정희, 의료보험 제도 처음 실시

건강보험제도는 ‘질병이나 부상으로 인해 발생한 고액의 진료비로 가계에 과도한 부담이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국민들이 평소에 보험료를 내고 보험자인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이를 관리·운영하다가 필요시 보험급여를 제공함으로써 국민 상호간 위험을 분담하고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사회보장제도이다. 헌법 제34조 제1항 및 제2항, 사회보장기본법 제3조, 국민건강보험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

한국에서 건강보험 제도가 처음 시작된 것은 박정희 정권때다. 행정안전부 산하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의료에 대한 사회보험을 실시하고자 하는 의도는 1963년 「의료보험법」이 처음 제정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의 발의로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하고자 하였지만 이는 오랫동안 시범사업으로만 운영되었다. 의료보험제도가 국민을 상대로 제대로 시행되기 시작한 것은 의료보험법이 제정된 지 14년이 지난 1977년부터이다. 1500명 이상의 사업장에 직장의료보험제도가 처음 실시된 것이다. 당시 유신정권은 의료비의 가파른 상승으로 국민들 불만이 커지는 것에 긴장했다. 주요 의료기관이 돈이 없다는 이유로 진료를 거부해 사망자가 속출하자 박정희는 14년 동안 유예했던 의료보험법을 전격적으로 시행했다. 당시 정부는 돈이 없었기 때문에 의료보험제도 도입에 필요한 재원은 전적으로 재벌기업에게 의존했다. 대기업 종사자 중심의 의료보험제도가 처음 시작된 이유다.

1979년 1월에는 공무원과 사립학교 교직원을 편입했고, 1988년 1월부터 농어촌 주민을 지역조합을 통해 의료보험에 가입시켰다. 1988년 7월에는 5인 이상 근로자의 사업장까지 직장의료보험이 적용되도록 하였고, 1989년 7월 마침내 도시지역 자영업자까지 의료보험제도에 포함되면서 전 국민 의료보험제도가 완성되었다. 이 같은 연혁은 국민건강보험공단 홈페이지 및 언론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두환, '전국민 의료보험' 도입 발표

그러면 전두환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박정희가 건강보험제도를 도입했지만 여러 한계가 있었다. 쉽게 말하면 '번듯한 직장'에 다니지 않으면 의료보험 혜택을 받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전두환 대통령은 1986년 9월 2일에 의료보험제도의 전국민 확대를 약속하고 1989년 1월부터 시행할 방침을 밝혔다. 이 때 전국민 의료보험 뿐 아니라 국민연금제도, 최저임금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같은 내용은 여러 언론보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두환 정권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국민연금과 의료보험을 도입하기로 한 것은 고조되던 반독재 투쟁 운동과 관련이 있다. 1986년에는 부천서 성고문 사건이 불거져 여론이 들끓고 있었다. 정권 입장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성난 여론을 달랠 필요가 있었고 일종의 '당근'으로 전국민 의료보험제가 나오게 된 것이다. 

전국민의료보험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는 직장, 농어촌, 도시영세민 등 각 조합별로 다른 체계였다. 형평성과 재정 지원 등에서 다양한 불만이 제기됐다. 요즘 같은 시대라면 각 단체들의 이익을 조정하고 양보를 구하는 것이 까다로워 엄두도 못 낼 상황이지만, 당시는 권위주의 정부였기에 그나마 추진이 가능했다. 하지만 전두환 정권도 조합통합 여부는 답을 내지 못하고 뒤로 미룬 채 전국민의료보험 실시를 선언했다.

전두환 정권 말기는 한국민주화운동 역사로 볼때 가장 중요한 사건들이 터져나왔던 시기다. 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진 오랜 군사독재를 끝내려는 운동이 활발했고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을 거쳐 대통령 직선제를 포함한 개헌이 진행됐다. 이 기간 동안 전두환 정권이 추진했던 정책은 당연히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노태우, 전국민 건강보험 공약 및 시행

전국민 건강보험을 시행한 사람은 노태우 대통령이다. 1987년 당시 노태우 후보는 전국민 건강보험 공약을 내걸었다. 그해 12월 치러진 13대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의 분열 덕분에 36.6%의 지지율로 당선된 민정당 노태우 후보는 자신의 공약대로 1989년 전국민의료보험을 실시한다.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1993년 2월 12일 당시 국무총리행정조정실에서 발간한 <제6공화국정부5년 노태우대통령공약실천>책자 92~93페이지에 “국민의 의료보장을 위해 77년 7월 처음 도입되어 그동안 주로 임금노동자를 중심으로 적용대상을 꾸준히 확대하여 온 의료보험제도를 88년 1월에 농어촌 지역의료보험, 89년 7월에는 도시지역의료보험을 실시함으로써 제도 도입 후 12년 만에 전국민의료보험을 실현하였다”고 되어 있다.

정리하면 국민건강보험을 처음 실시한 것은 박정희였다. 그러나 대기업에 의존했기 때문에 한계가 많았다. 전두환은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 전국민 의료보험 도입을 전격적으로 발표했지만 민주화 열기에 휩쓸려 추진을 못하고 물러났다. 전국민 건강보험이 빛을 본 것은 노태우 정부때다.

민주화항쟁은 '전국민 건강보험' 실시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까

그런데 1987년 6.29 선언을 노태우가 했다고 해서 그의 공이라고 보기 힘들듯이 노태우가 건강보험을 도입했다고 해서 전적으로 노태우의 공으로 돌리기 힘들다. 전우용이 '6월항쟁'을 전국민 건강보험 도입의 일등공신으로 내세운 데는 이런 역사적 배경이 깔려 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민주화 투쟁이 없었다면 전두환이 일종의 대국민 당근책인 국민연금, 최저임금제, 전국민 건강보험제도 도입을 약속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또 6월항쟁이 없었다면, 그리고 노태우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없었다면 노태우가 전국민 건강보험 공약을 이행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이자 제주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저서인 <복지국가는 삶이다>에서 “전 국민 의료보험은 노태우 정권의 정치적 승부수”라고 주장했다. 당시 전국민 의료보험은 당시 영국·덴마크 등 선진복지국가들에 이어 18번째로,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실시되는 것이었다. 

신영수 세계보건기구(WHO) 서·태지역 사무처장은 2007년 12월 대한의사협회지에 기고한 <의료보험 도입 30년의 성과와 한계, 그리고 새로운 과제>를 통해 한국의 전국민 의료보험 제도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단기간에 도입됐다고 밝히고 있다. 독일의 경우 100년 일본의 경우 36년이 걸렸는데 한국은 1966년 의료보험법 제정을 기준으로 하면 26년, 1977년 직장의료보험 실시를 기준으로 하면 불과 12년만에 전국민 의료보험을 달성했다. 

보험미래포럼이 2012년 발간한 <건강보험의 진화와 미래>는, 전국민의료보험 도입을 앞두고 여러 관련단체들의 문제제기와 저항이 있었고, 이는 국회와 노태우 정부의 정책방향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런 저항은 건강보험 통합을 지연시켰고 노태우의 전국민 건강보험은 불완전한 형태로 이어지게 됐다.

“통합을 둘러싼 갈등은 1988년 농어촌 의료보험 확대를 놓고 재연된다. 1988년 1월부터 농어촌 의료보험이 실시된 후 보험료에 대한 불만과 의료기관 이용 차별에 문제를 제기하며 농민들이 보험증을 반납하는 등 저항에 나섰다. 이에 대한의사협회를 위시한 보건의료단체들이 가세하면서 이들은 '의료보험 통합일원화, 국고지원 50%, 의료보호확대'를 요구하며, 1988년 6월에 48개 단체가 참가한 '전국의료보험대책의원회'를 결성한다. 재정공동사업을 통한 조합 간 재정지원사업에도 불구하고 조합 간 재정의 원천적 불평등 구조를 시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각계에서 그치지 않았다. 이러한 목소리를 늘 들어왔던 정치인들은 그러한 이유로 의료보험 통합에 꽤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여야 의원들은 노태우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던 전 국민 의료보험 실시를 이행하는 차원에서 1989년 3월 9일 만장일치로 의료보험을 통합한 ‘국민의료보험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킨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1989.3.16)로 법 집행은 무산된다”

김대중, 쪼개진 건강보험조합 통합해 현재 제도 완성

하지만 노태우 대통령이 실시한 전국민 건강보험제도도 문제가 많았다. 과거에 세워졌던 다양한 건강보험조합을 통합하지 못한 채 별도로 운영을 하면서 비효율과 형평성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건강보험은 2000년 각 조합의 통합을 통해 비로소 전국민 건강보험이라는 온전한 모습을 갖추게 된다. 2000년 건강보험으로 통합전까지 227개 지역의료보험조합, 139개 직장의료보험조합 및 공무원, 사립학교 교직원 의료보험관리공단이 별도로 운영되고 있었다. 조합마다 재정 상태도 달랐고 보험료 역시 최대 4배 가량 차이가 났다. 조합마다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이들을 통합하는 것은 고도의 정치력과 협상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후보시절 건보통합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전국민 건강보험제도가 실시되게 된 것이다. 

원광대 보건복지학부 원석조 교수는 2006년 8월 발간된 <건강보험통합 논쟁의 전개과정에 관한 연구>논문에서 전국민건강보험 도입이후 건강보험통합 과정에서 “1980년 복지부(당시 보사부) 내부에서 시작된 건강보험통합논쟁은 곧바로 정치계, 언론계, 학계 등으로 확대되었으며, 1980년대 후반부터는 농민단체, 진보적 보건의료단체, 건강보험노동동합 등 시민사회단체가 중심이 된 건강보험 시정운동으로 발전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참여연대도 <건강보험통합 쟁취사>에서 “1989년 전국민 의료보험을 시작할 때만해도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수백 개의 조합으로 쪼개져있었다. 그래서 소위 강남구처럼 부자조합은 돈이 남고, 철원군처럼 가난한 조합은 늘 적자에 시달렸다. 조합은 낙하산 인사와 각종 부패의 온상이기도 했다. 이에 모든 조합을 하나로 합치자는 운동이 전개되었다. 1988년 농민들의 보험료 거부운동에서 시작한 의료보험 통합운동은 많은 시민, 노동단체의 연대 활동으로 이어졌으며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마침내 2000년 7월1일 통합을 이루어냈다”고 기록하고 있다.

<르몽드디플로마티크>는 2010년 7월 12일에 게재된 <박정희가 ‘건강보험의 아버지’인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런 ‘박정희표’ 의료보험의 한계가 일부 극복돼 현재 모습의 건강보험이 된 것은 두 번의 대수술을 거친 뒤였다. 1988~89년의 전 국민 건강보험 도입과 2000년 건강보험 통합이 그것이다. 건강보험 적용 범위를 전 국민으로 넓히기 위해서는 1987년 6월항쟁과 7~9월의 노동자 대투쟁이 필요했다. 이후에도 대기업 ‘부자’ 조합과 도시와 농촌의 ‘빈자’ 조합을 통합해 국가가 직접 운영하게 된 데는 ‘의료보험 연대회의’가 주도한 10년간의 노동·농민·시민운동의 투쟁이 필요했다” 고 기술했다.

단순하게 역사적 연혁만 기록한다면 한국의 의료보험은 1977년 박정희 정권 때 시작됐고, 1986년 전두환 정권 때 '전 국민'도입 계획이 발표된 뒤, 1989년 노태우 정권 때 전국민의료보험으로 확대됐고 2000년 김대중정권 때 조합통합으로 지금의 국민건강보험으로 완성됐다고 볼 수 있다. 팩트는 여기까지다. 이 과정에서 전우용이 밝힌 것처럼 국민들의 투쟁이 영향을 미쳤는지, 전두환의 추진계획이 더 중요했는지, 노태우의 실행이 가장 결정적 역할을 했는지 등의 판단여부는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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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때 기획.. 대기업, 교직원, 공무원을 중심으로 부분 실시..

 

전두환때 전국민 건강보험 발표..(실시가 아니라..)

 

노태우때 전국민 건강보험 실시..

 

김대중때 건강보험조합을 모두 통합하여 현재의 건강보험으로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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