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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논란거리/사회

행안부의 황당한 3.1절 설명... 만주서 임시정부가 시작?

by 체커 2024.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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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는 3.1절 이후에 만들어져... 누리꾼들 비판 일자 게시물 삭제
[박성우 기자]

▲  3.1절 기념식을 주관하는 부처인 행정안전부가 정작 3.1운동에 대해 잘못된 설명을 공식 SNS 계정에 기재해 논란이 예상된다.ⓒ 행정안전부 X

3.1절 기념식을 주관하는 부처인 행정안전부가 3.1운동에 대해 잘못된 설명을 공식 SNS 계정에 기재해 논란이 예상된다.


지난 29일 행정안전부 공식 X(구 트위터) 계정은 "3.1절을 맞아 방문하기 뜻깊은 명소를 추천해 드린다"라며 서대문형무소와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을 추천하는 내용의 게시글을 올렸다.

그런데 이 중 3.1운동에 대해 설명한 내용이 잘못되어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행안부는 3.1운동에 대해 "1919년 3월 1일, 만주 하얼빈에서 시작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선언과 동시에 만주, 한국, 일본 등에서 일어난 대규모 항일 독립운동"이라고 설명했다.

 

"임정 독립선언과 동시에 3.1운동"... 잘못된 설명에 누리꾼들 비난 쇄도
  
하지만 행안부의 이러한 설명과 달리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3.1운동의 영향을 받아 3.1 운동 이후에 수립되었다는 것이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다. 현재 정부 역시 1919년 4월 11일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로 기념하고 있다.

임시정부의 독립선언이 아닌 "조선청년독립단은 우리 이천만 겨레를 대표하여 정의와 자유와 승리를 얻은 세계 여러 나라 앞에 우리가 독립할 것임을 선언하노라"라고 공표한 일본 유학생들의 '도쿄 2.8 독립선언',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 제창이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기미독립선언서'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것은 학계는 물론 일반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3.1운동 이전 발표한 독립선언서로는 일명 무오독립선언서로 불리는 대한독립선언서가 있다. 대한독립선언서는 1919년 2월 만주 길림 등 해외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 39명이 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행안부가 언급한 독립선언이 대한독립선언서라고 가정하더라도 하얼빈이라는 위치도, 임시정부라는 주체도, 3월 1일이라는 날짜도 모두 틀렸다. 또한 대한독립선언서는 현재 학계에서도 3.1운동 이후인 1919년 3월 11일에 작성되었다는 학설이 존재해 논의 중이다.

이러한 행안부의 잘못된 설명에 누리꾼들은 "임시정부는 수립이 1919년 4월 11일이고 위치는 상하이다. 도대체 무슨 내용을 적어놓은 건지", "무식이 하늘을 찌른다"며 거센 비난을 이어갔다. 현재 행정안전부는 해당 게시물을 별다른 해명 없이 삭제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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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에 대해 가짜뉴스 운운하며 핍박하더만.. 정작 윤석열 정권도 가짜뉴스를 배포했다 삭제를 했군요..

 

삼일절은....

1919년 3월 1일부터 수 개월에 걸쳐 한반도 전역과 세계 각지의 한인 밀집 지역에서 시민 다수가 자발적으로 봉기하여 한국의 독립을 선언하고 일본 제국의 한반도 강점에 대하여 저항권을 행사한 비폭력 시민 불복종 운동(civil disobedience)이자 한민족 최대 규모의 독립운동

독립을 선언한 날이죠...

 

위의 보도내용에도 있지만 독립선언은 3월 1일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참고링크 : 기미독립선언서(3.1 발표된 선언문)

 

참고링크 : 대한독립선언서(무오독립선언서)

 

독립선언을 한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세워졌죠.. 세워진 곳은 중국 상하이입니다..

 

참고링크 : 대한민국 임시정부

3.1 운동의 결과 상하이에서 항일 독립운동가들이 모여 1919년 4월 10일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을 창설했다. 여기에서 국호와 정부 형태, 임시헌법 등을 논의하게 되었는데, 신석우가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흥하자"라고 제안하여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이와 함께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제정했다. 이때 여운형은 "대한이란 말은 조선 왕조 말엽에 잠깐 쓰다가 망한 이름이니 부활시킬 필요가 없다."며 반대했다. 후에 그의 조직인 조선건국준비위원회가 내세운 국호도 조선인민공화국이었다. 다음 날인 1919년 4월 11일 임시의정원은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제정하고 이승만을 초대 국무총리로 하여 상하이 임시정부를 결성했다.

그리고 대한민국 헌법에는 이런 내용이 있죠..

 

참고링크 : 헌법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ㆍ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ㆍ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ㆍ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그런데... 

 

정작 윤석열 정권의 행정안전부는..

"1919년 3월 1일, 만주 하얼빈에서 시작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선언과 동시에 만주, 한국, 일본 등에서 일어난 대규모 항일 독립운동"

뉴라이트 정권이라.. 일제강점기 시절의 독립운동을 외면하고 싶었었나 봅니다. 앞으로는 독립운동을 기념하고 떠받드는 모습을 보이지만.. 뒤돌아서선 이를 부정하고픈 마음.. 말이죠.. 물론 추측입니다.. 직접 그들의 입으로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죠..

 

그동안 여러 정권이 들어서면서 3월 1일에 삼일절을 기념하는 행사와 입장을 보였을텐데.. 이런 사례를 만든 적.... 얼마나 있었을까요?

 

공무원들도 이미 여러차례 겪었을 기념일인데... 이전에 하지도 않은 실수를 왜 지금에서야 할까 의문이 들죠..

 

그래서.. 혹여나 의도적으로 했다가 바로 지적이 나오니.. 그냥 슬그머니 없앤거 아닐까 싶네요.. 아무런 입장 없이 게시물만 삭제를 한 걸 보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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