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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논란거리/사회

'3·15의거 빠진 한국사교과서'…경남교육청·도의회, 수정 요청

by 체커 2024.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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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16종에 3·15 부정선거 기술에만 편중…관련 단체도 반발 성명

 

(창원=연합뉴스) 김동민 기자 = 내년부터 학교에서 사용될 새 검인정 한국사 교과서에 대한민국 최초의 민주화 운동 '3·15의거'가 누락되거나 축소된 것과 관련해 경남도교육청과 경남도의회가 반발하며 정부와 출판사 등을 상대로 시정을 요청했다.

도교육청은 교육부 검정을 통과해 2025년부터 사용될 중·고등학교 역사 및 한국사 교과서에 3·15의거 내용이 포함되지 않거나 축소한 것과 관련해 교육부와 16개 출판사 등에 수정을 요청했다고 17일 밝혔다.

도교육청이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역사 및 한국사 교과서를 전수 조사한 결과 중학교 7종 교과서(지학사, 미래엔, 리베르스쿨, 비상교육, 해냄에듀, 천재교과서, 동아출판) 모두 3·15의거의 역사 용어 자체를 빠뜨린 것으로 확인됐다.

또 고교 9종 한국사 교과서 중 3종(미래엔, 씨마스, 한국학력평가원)에만 3·15 마산 의거, 마산의거, 3·15의거 기념탑이라는 표현을 부분적으로 게재한 것으로 파악됐다.

도교육청은 중·고교 16종 역사 및 한국사 교과서 모두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 기술에만 편중해 3·15의거는 빠뜨린 채 '3·15 부정선거→4·19혁명'으로 기술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부정선거와 4·19혁명 사이에 3·15의거를 포함하는 것이 역사적 흐름으로 타당하다고 덧붙였다.

경남도의회 교육위원회도 도의원 64명 만장일치로 발의한 '교과서 시정 촉구 대정부 건의안'을 의결했다.

건의안은 오는 22일 본회의 의결을 거쳐 대통령, 국회의장, 국무총리, 교육부, 행정안전부, 국가보훈부, 각 정당 대표 등에 전달될 예정이다.

박종훈 교육감은 "3·15의거는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의 효시로, 경남의 자랑스러운 역사이자 자긍심이다"며 "새로운 교과서에 '3·15의거' 역사 용어와 그 전개 과정, 희생자의 숭고한 정신이 오롯이 담길 수 있도록 교육부와 관계 기관에 적극적으로 요청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3·15의거는 1960년 3월 15일 마산지역 학생과 시민이 당시 자유당 정권의 장기 집권을 유지하기 위한 부정선거에 항거해 벌인 규탄 시위로, 대한민국 현대사 최초의 민주화 운동으로 불린다.

당시 의거에 참여했던 마산상고(현 마산용마고) 1학년 김주열 열사가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발견돼 의거는 4·19 혁명의 도화선이라고도 불린다.

앞서 3·15의거 관련 단체들은 지난 4일 공동 성명서를 내고 교과서에 3·15의거가 누락된 데 대해 반발했다.

사단법인 3·15의거 기념사업회를 비롯한 3·15의거 유족회, 3·15의거 부상자회, 3·15의거 공로자회 등 관련 단체들은 "우리 현대사 최초의 유혈 민주화운동인 3·15의거는 2010년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며 "그런데도 역사 교과서에서 사실상 지워지면서 그 역사적 의미가 후대에 제대로 전달될 수 없게 됐다"고 비판했다.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지 [연합뉴스 자료 사진]

image@yna.co.kr


참고링크 : 3.15 의거 - 나무위키

1960년 3월 15일부터 4월 13일까지를 전후하여 마산에서 3.15 부정선거에 항거하여 발생한 민주화 운동.

3.15 부정선거 당일 전국적으로 부정선거가 적발됐고 마산, 광주 등 여러 도시에서 투표권을 우롱당한 시민들과 학생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시위를 벌였는데 경찰이 총기를 발포하여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경상남도 마산시(현 창원시 마산합포구 일대)에서 벌어진 시위가 가장 유명해서 3.15 의거 = 마산으로 알려져 있다.

3월 15일 마산의 경우 아침에 장군동 제1투표소에서 민주당 참관인과 자유당원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는데 참관인이 투표함을 엎어 버리자 그 투표함에서 부정선거가 적발되었다.

투표함을 엎어 버린 참관인 안맹선과 그의 남편이자 민주당 경상남도의회 의원 정남규는 사전투표를 발견했으나 곧 경찰서에 끌려갔다.

경찰서로 끌려간 정남규는 도의원 신분이라서 곧 풀려났는데 그는 곧장 오동동 마산시당부로 가서 민주당원들과 논의한 끝에 아침 10시 30분 독자적으로 선거 포기를 선언하고 참관인들을 철수시켰다.

이후 방송을 통해 부정선거 무효를 주장하고 오후 3시 30분부터 민주당원들이 모여 시위를 시작했다.

민주당원들은 가두시위를 벌이며 시위대를 모았고 오동동 마산시당부에 1,500여명의 시위대가 모였는데 이때 경찰들이 들이닥쳐 민주당원들을 연행하고 시위대들에게 해산할 것을 요구했으나 시민들에게 욕만 대차게 먹고 자리를 떠났다.

특히 경찰 간부가 곤봉으로 고등학생을 두들겨패는 바람에 그 자리에 모여있던 군중들은 더욱 격앙되었고 남은 시위대들이 독자적으로 시위에 돌입하자 경찰과 반공청년단들이 이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시위대들은 저녁에 개표가 시작되는 시청으로 모이자고 서로 약속하고 해산하게 된다.

이 소식이 시내에 퍼지자 마산 시민들은 저녁 즈음 옛 마산시청 앞에 모이기 시작했고 시위 인원은 만여 명을 넘을 정도로 불어났다.

일부는 당시 마산의 중심가였던 남성동파출소로 모였으며 일몰 후 시위대와 경찰과 대치 상태가 한동안 계속되던 중 시위진압을 위해 출동한 소방차가 무학초등학교 앞 전신주를 들이받아서 전기 공급이 끊어졌다.

이로 인해 정전이 일어나 신마산 일대가 깜깜해졌다.

경찰은 때를 놓치지 않고 시위대를 향해 총격을 가했다.

같은 시각 남성동파출소에서도 발포로 한 명이 사망했고 시청 앞 발포 이후 시위대들은 자정이 다 될 때까지 관공서, 경찰서(및 파출소), 자유당사 등을 습격하며 저항했다.

제1차 마산의거로 총 9명이 사망하고 8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에 마산 시민들은 물론 전 국민이 충격에 빠졌다.

4.19 혁명이 일어나기 전... 전조로서... 당시 3.15 부정선거가 발생하자 이에 반발하며 발생한 시위중 하나인 3.15 의거입니다..

 

경남에서 일어난 일인데... 이걸 한국사교과서에서 누락시켰다고 하네요.

 

역사라는건... 과거에 일어난 일입니다.. 왜곡 없이 그대로 알려지고 교육받아야 하죠.. 그게 제대로 안되면... 일본처럼 과거의 만행을 부정하고 억지를 부립니다.. 혹은 과거의 일을 묻어 잊혀지게 만들려 하기도 하죠..

 

항의를 했고.. 그래서 수정을 검토하거나.. 뭐 이런게 아닙니다.. 지금도 누락된 채 교과서가 만들어진 듯 싶습니다. 속히 반영되었음 좋겠군요.. 

 

그나저나 3.15의거가 발생한 곳은 경남 마산입니다... 그 정당 지역구인데... 왜 누락시켰는지 의아하네요.. 혹여 교과서를 만드는데 있어서 뉴라이트가 관여해서 그런건가 싶기도 합니다.. 3.15 의거는 뉴라이트가 숭상하는 이승만을 몰락시키는 계기중 하나였으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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