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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번째 보유국 됐지만 사라진 '한국 1호 우주인'

by 체커 2021.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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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일반인들이 우주 관광을 즐기는 ‘뉴스페이스(New Space)’ 시대가 열리면서 한국인들도 우주 여행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한국인으로 우주를 처음 여행한 사람은 2008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 소속 이소연 박사였다. 이 박사는 그해 4월8일 러시아 소유즈 발사체를 타고 국제우주정거장(ISS)을 방문해 10일 동안 머물면서 각종 우주실험을 진행해 한국 최초의 ‘우주인’이자 세계 49번째 여성 우주인이 됐다. 한국은 36번째 우주인을 배출한 나라가 됐다.

이 박사는 2006년 12월25일 우주인 후보로 최종 선발됐다. 당시 정부는 선발 과정을 방송사와 함께 생중계하면서 국민들 사이에서 ‘우주 열풍’이 불었다. 2006년 진행된 선발 과정에 무려 3만6204명이 지원한 것이다. 체력 테스트를 위한 3.5㎞ 달리기를 시작으로 8개월간 진행된 선발 과정은 종합상식에서 언어, 사회, 우주 적응력까지 말 그대로 모든 면에서 ‘완벽한’ 사람을 뽑기 위한 절차였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이 박사와 고산씨 등 2명이 우주인 후보로 뽑혔고, 다음 해 3월부터 러시아 가가린우주센터에 입소해 1년간 고된 훈련을 받은 끝에 한국인으로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우주를 여행한 영광을 안게 됐다. 원래 동료 고씨가 우주인으로 선정됐지만 정식 비행 한 달을 앞두고 보안 규정 위반으로 탈락하는 바람에 이 박사가 행운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이 박사의 우주 여행은 두고 두고 후과를 낳았다. 이 박사와 고산씨를 우주인으로 훈련시키고 우주로 보내는 데 들어간 돈은 260억원이나 됐다. 하지만 정작 이 박사는 우주인이 된 지 몇 년 뒤인 2012년 훌쩍 미국으로 떠나 전공과 거리가 있는 MBA 과정에 입학했다. 다음 해 한국계 미국인과 결혼해 현재도 미국에서 거주 중이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 박사는 한국 우주 개발의 아이콘으로서 한국의 우주 진출을 위한 연구개발(R&D)에 앞장서 있어야 했다. 무려 260억원을 들여 키운 우주인이 자리를 떠났고 덩달아 유인우주기술의 노하우도 사라져 버린 것이다.

한편 2024년 실행될 미 항공우주국(NASA)의 달 착륙 프로젝트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의 우주인 후보에 한국계 미국인인 조니 킴씨가 포함돼 한국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는 2017년 1만8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NASA의 우주비행사로 뽑혔다. 지난해 말 NASA가 발표한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의 우주인 최종 후보 18인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킴씨는 미국에서 대표적 소수자인 아시안 이민 가정 출신인 데다 학대를 일삼던 아버지가 총기를 난사하던 중 출동한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지는 등 가슴 아픈 가정사를 겪었다. 이후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에 입대해 은성 무공훈장을 받는 전공을 세운 후 하버드 의대에 진학해 외과의사가 됐고, 결국 최고의 스펙이 필요하다는 NASA의 우주비행사가 됐다. 아시아계라는 한계와 가정폭력의 아픔을 딛고 일어선 것이다. 킴씨는 증오범죄 급증으로 침체에 빠진 아시아계 미국인 사회에 큰 울림을 주고 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참고링크 : 이소연(나무위키)

 

대한민국 최초 우주로 간 우주여행 참가자

 

2012년 재미교포와 결혼하여 미국에서 정착하였고.. 2014년 항공우주연구원을 퇴사하였습니다.


참고링크 : 최초 우주인 미션 완수 언제까지 ‘전도사’하라고…(신동아 12월호 2014.11.21)

 

“영국 기자가 ‘어떤 콘셉트의 우주인이 될 거냐’고 물은 적 있어요. 그때 ‘woman next door, 이웃집 여자’라고 대답했어요. 열심히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걸 가까이에서 보여주는 것. 그게 한국 우주인의 미션 아닐까요.”(‘주간동아’ 600호 커버스토리에서)

기자는 2007년 8월, 그러니까 한국 최초 우주인 후보가 이소연 씨와 고산 씨로 압축돼 다음달 프라이머리(正) 우주인 선정을 앞두고 있을 때 두 사람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각종 훈련과 면밀한 평가, 대중의 관심까지 예민하게 느낄 상황에서도 이씨는 쾌활하고 당차 보였다. 그는 “지구로 귀환하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은 별로 안 해봤다. 새로운 일을 경험하고, 모르는 세계를 알게 되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게 말했다.

7년이 지났다. 그 사이 이씨는 최초의 한국 우주인으로 선정돼 무사히 우주를 다녀왔고,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으며, 각종 행사와 강연에 초청돼 전국을 돌아다니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거기서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 결혼했다. 그리고 지난 7월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에 사표를 냈다. 2012년 여름 미국 UC버클리대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밟으러 떠났을 때부터 일었던 ‘먹튀 논란’은 항우연에 낸 사표가 수리됐을 때 정점을 찍었다. ‘여자라고 특혜를 줬는데 결혼하더니 역시나 입을 씻었다’ ‘그의 항우연 퇴사로 260억 원짜리 프로젝트가 아무 소득 없이 막을 내리게 됐다’ 같은 말이 나왔다.

이씨는 나랏돈으로 ‘우주관광’이나 하고 온 걸까. 그가 항우연을 퇴사함으로써 한국인 최초의 우주 경험과 그 성과는 싹 사라져버리는 건가. 이씨가 지금도 항우연에 남았다면 어떤 일을 맡고 있을까.

“내가 점점 비어가는 느낌”

 

2005년 말부터 본격 시동이 걸린 한국 우주인 배출 사업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한국 최초 우주인 배출을 통해 유인 우주기술을 습득한다. 둘째, 우주 개발에 대한 국민, 특히 청소년의 관심과 이해를 제고한다. 모두가 들떠 놓쳤지만, 우주에 다녀온 이후에 관한 계획은 애초부터 없었다.

2008년 4월 8일 지구를 떠나 19일 무사 귀환한 이씨는 5월 14일 청와대 방문을 시작으로 두 번째 사업 목적인 ‘우주개발에 대한 국민 관심 제고’를 위한 대외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2012년 5월 말까지 4년 1개월 동안 강연 235회, 행사 90회, 언론 접촉 203회 등 총 528회의 대외활동을 했다. 일주일에 두세 건의 대외활동을 한 셈인데, 일정이 특정 기간에 몰려 있는 때가 많아 고충이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항우연이 홍의락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게 제출한 일별 활동 자료를 보면, 이씨는 2008년 6월 25일 하루 동안 KBS 도전골든벨 출연→SBS 직원 대상 강연→생명과학포럼 강연→과학영재 대상 강연→인천시 방문 순으로 5개 일정을 소화했다. 같은 해 7월 28일부터 8월 2일까지 6일 동안은 9개 일정이 잡혀 제주 충남 경기 광주 대전 등 전국을 돌았다. 우주에 다녀온 지 1년이 지난 2009년 하반기에도 이런 강행군이 여러 번 있었다. 이씨는 잦은 대외활동에 따른 어려움을 언론 인터뷰에서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했다.

“요즘 다시 전공 공부나 우주 연구에 주력하고 있나요?”

“아뇨. 벌써 6개월째 강연과 행사에 참석하고 있어요. 내가 점점 비어가는 느낌이에요. 솔직히 내실 없는 허상으로 소모되는 게 안타까운 심정도 있죠. 경험을 공유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내년에 먹을 씨앗까지 먹어버리면 씨를 다시 뿌려야 할 때 종자가 없잖아요. 지금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내가 종자를 남기든 말든 관심이 없죠. 내 스스로 좋은 종자와 좋은 열매를 만들어야 하는 숙제가 있어요.”

-중앙일보 2009년 1월 9일자 ‘시골의사 박경철의 직격인터뷰, 한국 최초 우주인 이소연’ 중에서

우주인 실험의 성과들

이씨는 항우연 연구원으로 재직하며 30여 편의 우주 관련 논문을 발표했고, 몇 건의 우주실험 관련 항우연 연구과제에 참여했다. 우주 공간에서 각종 실험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우주실험장비 개발을 도왔고, 공군과 협력해 520쪽 분량의 우주인 훈련 매뉴얼도 개발했다. 우주인으로서의 지식과 경험을 논문과 연구과제 등을 통해 정리한 것이다.

하지만 이씨는 여기서 더 나아갈 길을 찾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우주인 관련 프로젝트가 더는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우주개발중장기계획’에 우주인 관련 언급은 딱 한 줄만 나올 뿐이다. 물론 구체적인 일정도, 내용도 없다.

 

항우연 관계자는 “우리나라 우주개발사업은 선택과 집중이란 면에서 발사체 및 위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비용 대비 효과 면에서 볼 때 우주실험을 지상실험으로 대체하거나 외국 우주인에게 위탁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우주사업 예산은 연간 3000억~4000억 원 규모로 2014년도 예산에서는 ▲한국형 발사체 2350억 원 ▲다목적 실용위성 550억 원 ▲정보위성 430억 원으로 발사체·위성 사업이 예산 대부분을 차지한다.

‘우주관광이다’ ‘먹튀다’ 무성한 뒷말 속에서도 이씨가 국제우주정거장에 머물며 수행한 과학실험들은 하나둘 성과로 나타났다. 한국 우주인 배출 사업을 총괄했던 최기혁 항우연 미래융합연구실장은 “지상에서 우주와 같은 무중력 환경을 만들기는 불가하기 때문에 이소연 박사가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수행한 실험은 매우 귀한 것”이라며 “현재 가시적 성과를 보이는 것은 우주 저울, 마이크로 중력(무중력에 가까운 상태) 환경에서의 소형생물배양기, 추적우주망원경 실험 등”이라고 전했다.

대표적인 예가 7월 러시아 위성에 탑재돼 우주로 올라간 추적우주망원경 ‘MTEL-2’이다. MTEL-2는 박일흥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팀이 100% 우리 기술로 개발한 것으로, 800km 우주 상공에서 우주선(宇宙線·우주에서 지구로 떨어지는 입자들의 총칭)과 메가번개 등 아직 베일에 싸인 과학 현상을 포착, 기록하는 장비다.

이씨는 이 망원경의 베타 버전을 가지고 우주에 올라가 2기가(GB) 메모리카드 6개에 촬영 데이터를 담아왔다. 박 교수 팀은 그 데이터를 분석해 7개의 섬광을 발견하는 등 많은 성과를 올렸다. 박 교수는 “우주인 이소연의 실험이 우리 팀에게는 굉장히 큰 선물이자 중요한 스텝이었다”며 “이를 계기로 러시아가 우리 연구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여 이례적으로 수십억 원의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도 2009년 MTEL-1을, 이번에 MTEL-2를 우주에 올려 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씨가 우주에서 마이크로 중력을 이용해 수행한 근육세포 배양 실험도 심화 단계로 나아간다. 최 실장은 “이소연 박사가 우주에 가져간 생물배양기는 노트북만했는데, 지금은 골프가방 크기로 발전했다”고 설명했다. 장차 인류가 화성 탐사에 나서면 2~3년간 우주비행을 해야 한다. 따라서 근육과 뼈가 심각하게 약해질 수밖에 없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큰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에 대응해 항우연 등 국내 과학계가 마이크로 중력을 활용한 근육세포배양기를 통해 근육과 뼈의 약화를 지연하는 약물을 찾는 것이다.

이 같은 연구에 자극을 받아 2009년에는 아예 한국마이크로중력학회가 설립됐다. 학회장을 맡은 최인호 연세대 생명과학기술학부 교수는 “우주인 선발과 우주실험 선정 과정에서 각계 전문가들이 활발히 교류했고, 이것이 자연스럽게 학회 결성으로 이어져 함께 우주환경을 활용한 우주기초과학 연구를 한다”고 전했다.

 

후속 프로그램 없었다

‘우주인 이소연’을 계기로 한 단계 도약하는 전기를 마련한 국내 우주기초과학계는 이씨가 한국인 최초 우주인으로서 주어진 미션을 완수했다고 여긴다. 박 교수는 “이소연 박사가 우주에서 실험한 것들은 모두 결과물로 정리된 상태”라며 “개인의 삶도 중요한 것인데, 언제까지 ‘전도사’ 노릇만 하라고 할 순 없는 일”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최 교수는 “후속 우주인 프로그램이 없어 이소연 박사가 소외된 면이 있다”며 “어찌 보면 그가 더 발전할 여력을 국가가 제공하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씨는 항우연 퇴사 가능성이 거론된 6월 ‘과학동아’에 장문의 e메일을 보내 복잡한 심정을 드러냈다. 그는 e메일에 “공대 대학원생으로서 우주에서 실험한다면 정말 좋겠다는 순진한 생각에 (우주인에) 지원했다”며 “항우연 선임연구원이 되고 나서야 한국 우주인 배출 사업의 한계를 깨달았고, 정부 정책과 예산 결정 과정 등을 알고 난 뒤 현 상황을 이해하게 됐다”고 적었다. 해외 유학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유학 떠나기 전 과로로 병원 신세를 졌다”며 “(강연 등) 대외일정과 거리를 좀 두면서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올봄 한국계 미국인으로 검안의사(optometrist)인 남편과 함께 시애틀 남부에 자리한 워싱턴주(州) 소도시 푸알럽(Puyallup)에 정착했다. 2년간 ‘먹튀’ 논란에 시달렸지만 우주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자부심, 그리고 경험을 나눠야 한다는 책임감은 여전한 듯 보인다. 8월 이 지역 신문 ‘더뉴스트리뷴’(The News Tribune)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씨는 새 직장을 알아보면서 가끔 시애틀에 있는 비행박물관(Museum of Flight)에서 우주에서의 경험을 얘기하는 강연을 한다. 10월 29일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전날 미국 무인로켓이 발사된 지 6초 만에 폭발한 일을 안타까워하며 “하지만 나는 여전히 우주 활동의 새 영역을 열기 위해 애쓰는 모든 사람들을 응원하고 싶다”고 적었다.

이씨는 ‘신동아’의 인터뷰 요청을 거듭 사양했다. 그는 지인을 통해 “지금 상황에선 어떤 말을 해도 곡해될 것이라 조심스럽다”고 전해왔다. 지인은 “먹튀 얘기가 나올 때마다 소연 씨가 몹시 괴로워하는 걸 잘 알기 때문에 더는 인터뷰를 권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문득 2007년 인터뷰 때 미처 기사에 담지 못했던 대화 한 토막이 떠올랐다.

“우주에 나가서 갖다버리고 싶은 게 있어요?”(기자)

“선입견이요. 우리 인생에서 선입견이 걸림돌이 될 때가 많잖아요. 젊은 사람에게는 특히 더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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