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花樣年華). 인생에는 마치 꽃이 피었을 때처럼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이 있다. 하지만 야속한 세월은 멈추지 않기에 황금기를 지나 나이는 계속 들며, 늙고 병들어 결국 최후를 맞이하는 게 또한 인생이다.
아파트도 마찬가지다. 이제 막 입주를 시작해 사람들을 맞이하는 아파트를 보면 어는 곳 하나 빠지지 않고 빛이 나기에 인생의 화려한 봄날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봄날의 아파트도 세월이 흐르면 조금씩 빛을 잃어가기 마련이다. 마치 주름살처럼 벽에 금이 가고, 설비와 배관 등 이쪽저쪽이 고장 나고 고치기를 반복하다가 다시 새 아파트를 짓기 위해 허물어뜨리게 된다.
건축물에 존재하는 다양한 수명들
우리나라 아파트의 평균수명은 30년 정도로 추산된다. 나무로 된 가구도 잘만 관리하면 30년 넘게 사용하는데, 인류가 자랑하는 최고의 건설재료인 철근 콘크리트로 만든 것치고 수명이 생각보다 길지 않다. 영국과 독일의 아파트 수명이 120년이 넘는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우리나라 아파트의 수명에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피할 수 없다.
아파트와 같은 건축물을 오래 활용하기 위해서는 무너지지 않고 안전하게 서있을 수 있는 ‘물리적 수명’이 기본이 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경제·사회의 급격한 발전과 생활양식 변화로 인해 건축물이 기능적 가치를 상실해 ‘기능적 수명’이 다할 수 있고, 재개발 등 건축물을 둘러싼 환경 변화로 인해 ‘사회적 수명’이 결정될 수도 있다.
또한 건축물은 운영 측면에서 수익이 발생하는 ‘경제적 수명’을 유지해야 하며, 법적 지위나 의무를 부여하기 위한 ‘법적 수명’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법인세법 시행규칙에서는 아파트와 같이 철근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건축물의 내용연수를 40년으로 규정하는데, 세법상 40년은 고정 유형자산으로서 가치를 보유한다는 의미다.
우리나라에서 아파트의 수명이 짧은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일단 물리적 수명 관점에서 살펴보면 아파트가 오래됐을 때 벽이나 기둥에 금이 가고 균열이 발생해 안전이 위태위태해지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 구조물 자체보다 각종 설비들이 노후화되고 내구성이 다해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오래된 아파트에서는 녹물이 나와 수돗물을 마실 수 없고, 하수가 잘 막히고 역류해 넘치기까지 하며, 밀폐 능력이 떨어져 결로나 곰팡이가 쉽게 발생하고, 난방을 계속 틀어도 따뜻하지 않는 등 사용상 불편이 많이 발생한다.
하지만 각종 설비 배관과 배선들이 콘크리트 속에 매설돼 있어 점검 및 교체, 교환, 보수 등 유지관리가 사실상 불가능해 문제를 해결하기 만만치 않다. 아파트의 배관이나 배선을 교체하려면 벽면이나 바닥을 뜯어내야 하는데 공사 자체도 쉽지 않고 비용도 많이 든다.
반면 미국이나 유럽의 아파트에서는 배관과 배선이 외벽이나 주택 내부에 노출돼 있어 낡더라도 쉽게 보수하거나 교체할 수 있다.
벽체 하나 마음대로 옮길 수 없는 고정된 구조는 아파트의 기능적 수명의 단축을 재촉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고도 압축성장을 거치하면서 눈부시게 발전했는데, 우리나라 아파트의 절대다수는 아직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나 ‘응답하라 1994’시절의 벽에 갇혀 있다. 아파트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을 담는 그릇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개발이익을 위해 곳곳에서 재개발을 추진하면서 사회적 수명은 이미 바닥을 드러낸 상황이다.
상반된 시각을 가진 두 가지 검진
통계청이 매년 실시하는 인구주택총조사를 살펴보면, 2019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전체 아파트 1128만 7048호 가운데 준공한지 30년이 넘는 아파트는 93만 660호(8.2%), 20년 이상 30년 미만 아파트는 368만 3131호(32.6%)가 있다. 노후화가 시작된 20년 이상 아파트가 전체의 40.9%나 되는데, 우리나라 아파트의 현재 평균수명을 적용한다면 앞으로 불과 10년 내에 현존하는 아파트 다섯 중 둘을, 수치적으로는 무려 460여만 호를 허물고 다시 지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주거 안정과 환경 측면을 고려했을 때 이 많은 아파트들을 한꺼번에 부수고 재건축을 진행할 수는 없다. 똑같은 나이여도 사람에 따라 동년배보다 젊은 신체 나이를 보유한 건강한 사람이 있고 성인병에 시달리는 반대인 사람이 있는 것처럼, 아파트 역시 준공 연수가 갖더라도 개별적인 상태는 서로 다를 수 있다. 자원 낭비를 막기 위해서는 아파트의 노후화 상태를 면밀히 확인해 문제가 없을 경우에는 최대한 오래 사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개개인이 건강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건강검진을 진행하듯 아파트들도 개개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검사를 진행한다. 흥미로운 점은 아파트가 받는 건강검진은 빨리 부수기 위해 받는 검사와 더 오래 사용하기 위해 받는 검사로 나뉜다는 점이다. 전자는 ‘재건축 안전진단’이고 후자는 ‘시설물 안전점검’이다.
재건축 안전진단은 노후화된 아파트의 재건축 진행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진행하는 검사로, 아파트 나이가 최소 30살은 넘어야 신청 가능하다. 검사에 통과하면 아파트가 너무 낡아서 위험하고 불편해 허물어야 한다고 공인을 받는 것이고, 검사에 통과하지 못하면 아파트가 아직 쓸만하다고 인정받는 것이다.
재건축 안전진단은 건물 기울기와 하중을 받칠 수 있는 내하력, 내구성 등 ‘구조 안전성’과 도시 미관, 주차 대수, 일조 환경 등 ‘주거환경’, 그리고 지붕·외벽 마감과 난방·급수·도시가스의 설비 노후도 등 ‘건축 마감 및 설비 노후도’와 개보수 비용과 재건축 비용을 비교한 ‘비용 편익’ 등 4가지 항목을 평가해 결정한다.
한편 시설물 안전점검은 물리적, 기능적 결함이 있는지 확인하고 문제를 발견했을 때 신속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기 위해 진행하는 검사다. 시설물의 안전 및 유지관리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아파트는 15층 이상인 경우 제2종 시설물이 되고, 15층 이하인 아파트는 15년이 경과된 경우 제3종 시설물이 돼 주기적으로 점검을 받아야 한다.
기존 검사에서 아파트가 획득한 안전 등급에 따라 정기 안전점검은 반기당 1회(A~C등급)에서 1년에 3회(D, E등급)를, 정밀안전점검은 4년에 1회(A등급)에서 최대 2년에 1회(D, E등급)를 받아야 한다. 검사는 전문가 육안이나 점검기구 등으로 검사하여 시설물에 내재되어 있는 위험요인을 조사하는데, 주요 조사항목은 콘크리트 압축강도, 철근배근 간격 및 피복두께, 균열폭, 누수, 철근 노출, 탄산화 진행 깊이 등이다.
아파트의 잔존 수명을 예측하는 방법
아파트는 사람처럼 현재의 건강 상태를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과 달리 앞으로의 수명도 예측할 수 있다. 물론 경제·사회의 발전이나 재개발 계획 등 대외환경에 영향을 받는 기능적 수명이나 사회적 수명은 객관적으로 예측하기는 어렵다. 과학자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철근콘크리트의 변화를 활용해 아파트의 물리적 수명을 예측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아파트를 포함해 모든 건축물은 내구연한 목표를 가지고 설계되고 시공된다. 하지만 건축물은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열화(劣化, Deterioration) 현상에 의해 그 기능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열화는 시간의 경과에 관계없이 물리적, 화학적, 생물적 요인으로 인해 물체의 성능이 저하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파트의 살과 뼈대를 이루는 철근 콘크리트(R/C, Reinforced Concrete)는 열화 현상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건설재료다.
콘크리트는 배합 직후 수산화칼슘(Ca(OH)2)이 생성돼 pH 12~13의 강알칼리성을 띠게 된다. 강력한 알칼리성은 철근 주변에서 수산화제일철(Fe(OH)2)을 생성하고, 이는 다시 산소(O2)와 결합한 산화철(Fe2O3과 Fe3O4)로 변화돼 철근 주변에 부동태피막(Passive Protective Oxide Film)을 형성한다. 부동태피막 덕분에 철근콘크리트 내부에 산소가 존재해도 철근은 절대 녹이 슬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공기 중 이산화탄소(CO2)가 콘크리트 표면의 미세한 공극으로 조금씩 침투하는데, 강력한 알칼리성을 띠는 수산화칼슘과 만나면 탄산칼슘(CaCO3)과 물로 변화한다. 이와 같은 탄산화 과정을 통해 콘크리트 내부의 알칼리성은 점차 중성으로 바뀐다.
콘크리트의 중성화는 콘크리트 자체에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내부에 보강근으로 사용한 철근에 부식을 유발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철근은 부식되면 콘크리트로부터 떨어져 나가고 균열이 발생해 내구성과 강도가 급속도로 저하된다.
연구에 따르면 pH 10.4이하부터 철근 주변의 부동태피막이 파괴돼 철근 부식이 시작된다. 다시 말해 콘크리트 표면부터 탄산화가 시작돼 철근이 위치한 깊이까지 중성화가 진행돼 pH 10.4가 되면 이 철근은 부식이 진행될 수 있는 환경에 노출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콘크리트의 중성화 진행속도와 철근이 위치한 콘크리트 깊이, 현재 중성화 진행 위치를 알 수 있다면, 아파트에 남아있는 기간인 잔존 수명 예측이 가능하다.
탄산화 속도로 우리나라 아파트의 수명을 추정한 한 연구에 따르면, 아파트 평균수명은 48년, 내륙지역 아파트는 60년, 해안지역 아파트는 36년으로 나왔다.(김무한 외, ‘국내 철근콘크리트조 아파트의 실태조사에 의한 중성화 속도 및 잔여수명 검토에 관한 연구’ 참고)
또 다른 연구에서는 아파트 잔존 수명이 15년에서 737년까지 다양하게 평가됐다.(이명호 외 ‘기존 철근콘크리트 아파트의 잔존 수명에 관한 현장평가’ 참고)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른 국내 아파트의 물리적 수명은 현실의 실제 수명보다 훨씬 긴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아파트의 생애가 물리적 수명보다 기능적 수명, 사회적 수명, 경제적 수명으로부터 더 크게 영향을 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의 아파트.. 많죠..
그런데 아파트 단지등을 지나다니다 보면.. 재건축.. 재개발 현수막을 쓴 경우를 간간히 봅니다.
그럼 생각하죠.. 그 아파트가 얼마나 오래 되었는가를 말이죠..
그런데.. 30년 이상이 된 적이 없었던것 같네요..
한국의 아파트 수명은 짧습니다.. 왜일까 싶은데.. 그 답을 주는 내용입니다.
일단.. 유지관리가 어렵다... 배관.. 전선..등이 콘크리트에 묻혀있어 교체를 할려면 결국 벽을 까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의 아파트의 경우.. 기둥으로 상부를 지탱하는게 아닌..벽면이 상부를 지탱하도록 지어진 경우가 많아 함부로 벽면을 깔 수 없는게 상당수죠..
그래서 교체하면 계속 쓸 수 있는 부분도 구조상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파트 가격때문인 것 같네요.. 브랜드.. 한국에선 아파트등의 주거시설을 죽을때까지 사는 그런 주거지역이 아닌.. 투자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아파트 가격이 상승하면 팔고 싼 가격의 아파트로 옮기면서 차익을 얻는 그런 것을 말이죠..
이게 새로 지은 아파트의 경우.. 짓고난 뒤의 가격보다.. 이후 아파트의 가격이 상승한다는 점이 있어 아직 쓸만한 아파트임에도 무너뜨리고 다시 짓는 사례가 자주 나온다는 것 같군요..
한번 짓고.. 오래도록 사용하는것.. 환경적인 면에서도.. 정서적인 면에서도 좋지 않을까 싶고.. 유럽에서도 그런식으로 오랜 전통을 가진 주거구역이 꽤나 있을텐데.. 한국에선 한옥 빼고는 불가능해진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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