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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논란거리/사회

'유관순 허구·절도범·유부녀' 주장까지?...판결문·사료 따져보니

by 체커 2023.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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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실존 증거 수두룩…수형기록카드도 존재
수형기록카드에 사진, 이름, 생년월일, 죄명 기재
판결문·제적등본 존재…친구·지인 증언도 다수
사망일 변경은 시신 인계일·실제 사망일 차이

 

https://youtu.be/kXRmetDzv6E

 

[앵커]

'3·1절 일장기' 소동을 계기로 식민사관을 담아 역사를 재해석하려는 움직임이 인터넷상에서 퍼지고 있습니다.

3·1절에 집에 일장기를 걸어 논란을 부른 세종시 주민은 유관순 열사도 허구라는 주장까지 하고 있는데요.

판결문과 사료를 통해 근거가 있는 해석인지 따져봤습니다.

한동오 기자입니다.

[기자]

[이정우 / 3·1절 일장기 게양 세종시 목사 : 유관순 선생님에 대해서 실존 인물이다, 아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는데 저도 아직 공부하는 중입니다. 저도 다 파악이 안 됐고요. 한번 좀 깊이 숙고를 한번 해보고자 합니다.]

'유관순 허구설'은 2017년 '유관순은 허구 인물이다'라는 이 책이 나온 뒤부터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3·1 운동의 영웅 유관순은 실존인물이 아니라는 내용입니다.

195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교과서에서 생년월일과 사망 일자가 계속 바뀐다는 점.

수형기록카드 사진 속 인물은 머리카락을 뒤통수에 땋은 쪽머리를 했는데, 쪽머리는 유부녀의 상징이라는 점.

일본 경시청에 정보공개를 신청했는데, 1919년 천안에서 만세 부르다 옥사한 유관순은 없고, 1920년 경성역에서 물건을 훔치다 옥살이한 유관순은 있다는 말을 들었다는 주장 등을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박근창 / '유관순은 허구 인물이다' 저자 : 저는 100% 확실하니까 책을 냈지요. 허구, 가공 인물. 꾸며낸 가공 인물. 그림 속에 있는 수형자 사진은 절도범 유부녀 사진이다, 이 말이야.]

하지만 이런 주장과 반대로 유관순 열사가 실존 인물이라는 증거는 차고 넘칩니다.

사진과 이름, 주소, 출생지와 본적, 생년월일, 키, 지문번호, 직업, 죄명과 집행감옥까지 적힌 수형기록카드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당시 검찰청 기록을 넘겨받은 국가기록원엔 열사의 판결문이 존재하고, 유관순 가족의 본적, 출생, 사망일이 적힌 제적등본도 있습니다.

열사가 이화학당 다닐 때의 사진, 친구들의 목격담, 함께 수감 됐던 독립운동가의 회고까지 존재합니다.

생년월일과 사망 일자가 바뀐 이유도 음력, 양력 표기에 따른 기준 변경, 그리고 시신이 인계된 날과 실제 사망일의 차이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류정우 / 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 회장 : 음력을 양력으로 고쳐서 호적을 다시 만들었습니다. 옛날은 전부 음력으로 쓰다가 양력으로 쓰니까…. 시신을 인수받은 날이 10월 12일이고 실제 돌아가신 날은 9월 28일인데. 호적 확인을 해보니까 9월 28일 돌아가셨다고 돼 있어서 변경한 거지.]

유부녀 주장에 대해 국사편찬위원회는 머리 모양으로 결혼 여부를 판단하는 건 조선 시대에만 적용할 수 있는 것이라며, 1876년 개항 이후 서구의 근대사조를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1919년 한국인의 삶은 이전과 상당히 달랐다고 밝혔습니다.

'유관순 허구설'을 담은 책에서 당시 수감된 배화여학교 학생들 모두 댕기 머리를 했다는 사진은 전수조사를 해보니, 전체 21명 가운데 쪽 머리 학생도 8명 있어, 기혼설의 근거가 될 순 없었습니다.

'절도범 설' 역시 저자조차 근거자료가 없다고 밝혔고, 당시 일본 경시청과 통화했다던 저자의 지인은 '자료 없음'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유관순 열사의 수형기록카드에는 '보안법 위반', 판결문에는 독립운동으로 인한 죄명이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허구설은 법원에서도 받아들여진 적 없습니다.

서울중앙지법은 유관순 관련 내용이 무효이기 때문에 국정 교과서 지정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지난달 16일 기각, 각하했고, 항소심 재판을 앞두고 있습니다.

서울행정법원도 지난 2017년, 유관순 열사에 대한 독립유공자 공적을 재심사해달라는 소송을 기각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유관순 허구설'은 전혀 사실이 아니지만, 저자는 '유부녀설' 추가 출판을 예고했습니다.

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는 이제는 출판금지와 사자명예훼손 등 법적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YTN 한동오입니다.

YTN 한동오 (hdo86@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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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에 일장기를 건 목사가 뱉은 말로 인해 좀 논란이 생긴.. 유관순 열사에 대한 논란에 대한 팩트체크군요..

 

이 목사가 주장한 내용의 근거는 책을 본 것을 두고 의문제기를 한 것 같은데.. [유관순은 허구인물이다..]라는 책이군요..

 

참고링크 : 유관순은 허구인물이다 - 친일파들이 조작한 3.1독립만세운동의 영웅

 

저자가 주장한 19가지 의혹을 보면..

조작 의혹 1) 교육과정마다 유관순 서술 내용 다르다.
조작 의혹 2) 유관순 여학생 왜 유부녀 모습
조작 의혹 3) 유관순 수형자 기록부는 위조된 공문서이다.
조작 의혹 4) 유관순의 죄수번호 31번과 371번
조작 의혹 5) 전(傳)과 전기(傳記)의 뜻은 다르다.
조작 의혹 6) 이화학당 단체학생 사진은 합성 사진이다.
조작 의혹 7) 서로 다른 유관순 영정사진 조작 의혹
8) 유관순 호적이 없다는 반증들
조작 의혹 9) 유관순 제적등본은 위조된 공문서
조작 의혹 10) 무덤에 시신이 없다.
조작 의혹 11) 옥사와 출옥 날짜 다른 이유
조작 의혹 12) 절도범 유관순과 이화여고와의 관계
조작 의혹 13) 유관순을 교과서에서 삭제한 이유
조작 의혹 14) 유관순 판결문은 위조 되었다.
조작 의혹 15) 방학기간에 기숙사 생활이 가능한가?
조작 의혹 16) 옥사 사건 왜 신문에 보도되지 않았을까?
조작 의혹 17) 유관순 친구들의 거짓 증언
조작 의혹 18) 사진의 주인공은 절도범 유관순이다.
조작 의혹 19) 사자(死者)에 대한 명예훼손죄 고소 고발 왜 못 할까?

하지만 반박되는 자료는 이미 국가기록원에 남아 있는 상황... 수형기록입니다. 검찰청에서 국가기록원으로 넘어갔죠.. 검찰청은 당연히 일제시대에 보관되어 온 수형기록을 그대로 보관했다 넘긴 것이겠고요..

 

거기다.. 함께 수감되었던 다른 독립운동가들의 회고도 존재한다고 하니... 증거.. 증인.. 다 있는 셈이 되죠..

 

조작의혹중에.. 사자에 대한 명예훼손죄 고소 고발을 왜 못할까.. 라는 내용도 있는데..

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는 이제는 출판금지와 사자명예훼손 등 법적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제 하겠다고 합니다. 저자의 주장에 대해 대응을 안했거나.. 이런 책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의심이 들긴 하는데.. 이슈화되서 확실히 알았으니.. 법적대응에 들어가서 결국 저자가 패소하게 되면.. 이미 출판된 책의 회수.. 그리고 책 출판이후 경과된 시일에 따른 피해보상.. 그리고 추가 책 출판이 막히는 결과가 돌아오겠죠..

 

저자는 환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재판에서 사실여부를 따져볼 수 있다는 식으로 말이죠..

 

하지만.. 저자가 낸.. 서울중앙지법의 교과서에서 빼달라는 재판에 패소했고.. 서울행정법원의 공적 재조사 요구도 기각된 마당에.. 사자명예훼손으로 고소되어 재판받으면 패소할 확률은 꽤 높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거기다.. 저자가 주장한 자료 근거도 정작.. 

'절도범 설' 역시 저자조차 근거자료가 없다고 밝혔고, 당시 일본 경시청과 통화했다던 저자의 지인은 '자료 없음'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근거자료가 없거나.. 일본 경시청에서도 자료없음 통보를 받았다는 지인의 입장도 나왔으니.. 승소는 이미 가망이 없는지도..

 

뭐.. 저자는 돈을 마련해야 하겠죠.. 손해배상을 해야 할려면... 출판한지 시일이 꽤 지났으면 그만큼 배상해야 할 금액은 늘어날테니..

 

발행은 2017년 12월에 한듯 싶군요.. 5년이 지났으니.. 배상금은 꽤나 나올듯 싶으니.. 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는 빨리 재판을 걸어 이런 책이 퍼지는걸 막고.. 재판을 통해 배상을 받으면 유관순 열사에 대한 홍보를 좀 강화해야 하지 않을까 싶군요..

 

참고링크 : 2019년 1월 독립운동가 유관순 선생 공훈내용

 

참고링크 : 유관순 판결문(소요, 보안법 위반)

형사사건부(1919. 5. 9.)
판결문(경성복심법원, 1919.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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