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논란거리/정치

尹대통령 "피로 지킨 자유민주주의, 사기꾼에 농락 안돼"

by 체커 2023. 4. 19.
반응형

다음

 

네이버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이던 지난해 4월19일 서울 강북구 우이동 국립 4·19민주묘지에서 열린 제62주년 4·19혁명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2022.4.19/뉴스1 ⓒ News1 인수위사진기자단

(서울=뉴스1) 정지형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은 19일 "4·19혁명 열사가 피로써 지켜낸 자유와 민주주의가 사기꾼에 농락당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서울 강북구 국립4·19민주묘지에서 열린 제63회 4·19혁명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통해 자유민주주의 수호 의지를 천명하며 이같이 말했다.

윤 대통령은 "지금 세계는 허위 선동, 가짜뉴스, 협박, 폭력 선동, 이런 것들이 진실과 자유로운 여론 형성에 기반해야 하는 민주적 의사결정 시스템을 왜곡하고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거짓 선동, 날조, 이런 것들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은 독재와 전체주의 편을 들면서도 겉으로는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행세를 하는 경우를 많이 봐 왔다"고 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이러한 거짓과 위장에 절대 속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윤 대통령 기념사 전문.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4·19혁명 열사와 유가족 여러분!

불굴의 용기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자 분연히 일어섰던 4·19혁명이 63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이곳 4·19민주묘지에는 오백일곱 분의 4․19민주 영령들께서 영면해 계십니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해 횃불을 높이 들었던 학생과 시민의 위대한 용기와 희생에 경의를 표하며, 머리 숙여 명복을 빕니다.

지난 오랜 시간 가족을 잃은 슬픔을 안고 살아오신 유가족과 부상자 여러분께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불의와 부정에 항거한 국민 혁명은 1960년 2월 28일 대구를 시작으로 대전을 거쳐 3월 15일 마산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4월 19일 전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꽃다운 젊은 나이의 학생과 시민의 희생으로 대한민국은 ‘자유의 꽃’을 피우고, 자유를 지키기 위한 민주주의의 초석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4·19혁명 정신은 대한민국 헌법 정신이 되었습니다.

우리 정부는 어느 한 사람의 자유도 소홀히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는 4·19혁명이 국정 운영뿐 아니라 국민의 삶에도 깊이 스며들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자유민주주의와 국격을 바로 세운 4·19혁명 유공자들을 한 분, 한 분 놓치지 않고 기록하고 후세에 전할 것입니다.

정부는 처음으로 4·19혁명이 전개된 지역 학생들의 학교 기록을 포함하여 현지 조사를 실시하였고, 그 결과 서울, 부산, 대전, 대구, 강원, 전북, 마산 지역에서 주도적 활동을 하신 서른한 분에게 건국포장을 수여하게 됐습니다.

 

특히, 부산 지역 4·19혁명을 주도했던 부산고등학교의 열한 분의 공적을 확인하고 포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정부는 조국을 위해 용기 있게 헌신하신 분들을 찾아 대한민국 국가의 이름으로 끝까지 기억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민주주의는 국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정치적 의사결정 시스템입니다. 자유를 지키기 위한 민주주의가 바로 자유민주주의입니다.

독재와 전체주의 체제가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쓴다고 해도 이것은 가짜민주주의입니다.

우리가 피와 땀으로 지켜온 민주주의는 늘 위기와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독재와 폭력과 돈에 의한 매수로 도전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세계는 허위 선동, 가짜뉴스, 협박, 폭력 선동, 이런 것들이 진실과 자유로운 여론 형성에 기반해야 하는 민주적 의사결정 시스템을 왜곡하고 위협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은 바로 우리의 자유에 대한 위협입니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바로 우리 자유의 위기입니다.

거짓 선동, 날조, 이런 것들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들은 독재와 전체주의 편을 들면서도 겉으로는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행세를 하는 경우를 세계 곳곳에서 저희는 많이 봐 왔습니다. 이러한 거짓과 위장에 절대 속아서는 안 됩니다.

4·19혁명 열사가 피로써 지켜낸 자유와 민주주의가 사기꾼에 농락당해서는 절대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4·19혁명 열사를 추모하고 이분들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이 자리에 함께 섰습니다.

아울러 우리는 혁명 열사의 뒤를 따라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자유민주주의를 확고히 지켜내겠다는 결의를 가지고 함께 모인 것입니다.

뜻깊은 역사적 자리에 다시 한번 혁명 열사와 유가족분들께 감사 말씀을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2023년 4월 19일 대한민국 대통령 윤석열

kingkong@news1.kr


반응형

 

4월 19일.. 4.19 혁명이 일어난 날입니다.

 

참고링크 : 4.19 혁명(나무위키)

 

참고링크 : 4.19 혁명(위키백과)

4·19 혁명(四一九革命) 또는 4월 혁명(四月革命)은 1960년 3월 15일에 실시된 대통령과 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 정권이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한 개표조작을 하자, 이에 반발하여 부정선거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하는 학생들의 시위에 대규모의 시민들이 참여하며 전국적으로 확대된 반독재투쟁이자 혁명을 말한다.

부정 선거 당시 이승만 정부와 자유당은 4할 사전 투표, 투표함 바꿔치기 등의 부정을 저질렀다.

3·15 마산 의거에 참여한 김주열이 실종된 지 27일 후인 4월 11일 아침에 마산 중앙부두 앞바다에서 왼쪽 눈에 경찰이 쏜 최루탄이 박힌 채 시신으로 떠오른 것이 부산일보를 통해 보도되면서 시위가 전국적으로 퍼지며 격화되었다.

4월 18일에는 고려대 학생들이 시위 후 귀교 중 피습을 당하기도 했으며

4월 19일 경찰이 대통령 관저인 경무대로 몰려드는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여 다수의 희생자가 발생했고 발포 이후 시위대는 무장하여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며 맞섰다.

전국민적 저항과 군지휘부의 무력동원 거부에 봉착한 대통령 이승만이 4월 26일 하야를 발표함으로써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은 몰락하였고, 이 혁명의 결과로 과도 정부를 거쳐 6월 15일(6·15 개헌)에 제2공화국이 출범하였다.

개정된 헌법에 따라 국회는 참의원과 민의원으로 구성되었다. 국회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된 윤보선에 의해 지명된 장면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국무총리에 취임하였다. 그러나 부정 선거 책임자와 그 과정에서 부정 축재를 한 사람들을 처벌하는데 실패하였으며 민주당 내의 구파와 신파 분열이 일어났고 구정치인의 활동 금지와 부패한 공직자 처벌을 명분으로 곧 군사 정변이 일어나게 되었다.

4.19혁명.. 여러 원인으로 인해 시위가 촉발되었고.. 4월 19일에 대규모로.. 전국적으로 일어났죠.. 그로인해.. 이승만 전 대통령은 하야를 발표하고 미국 하와이로 돌아갔죠..

 

윤석열 대통령은 4.19 혁명 기념사를 했는데... 몇몇 부분이 우려스럽네요... 왜 4.19 혁명이 일어나는 단초가 발생했는지를 무시하는 듯한 문구가 보이는것 같아서 말이죠..

그러나 지금 세계는 허위 선동, 가짜뉴스, 협박, 폭력 선동, 이런 것들이 진실과 자유로운 여론 형성에 기반해야 하는 민주적 의사결정 시스템을 왜곡하고 위협하고 있습니다.
[중략]
거짓 선동, 날조, 이런 것들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들은 독재와 전체주의 편을 들면서도 겉으로는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행세를 하는 경우를 세계 곳곳에서 저희는 많이 봐 왔습니다.

이러한 거짓과 위장에 절대 속아서는 안 됩니다.

4·19혁명 열사가 피로써 지켜낸 자유와 민주주의가 사기꾼에 농락당해서는 절대 안 되는 것입니다.

몇몇 내용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은연중에 한국 언론사와 민주당등을 겨냥하는 듯한 발언이 보이죠..

 

가짜뉴스.. 아마 많은 이들이 기억할 겁니다.. 날리면...X팔려서.. 그걸 말이죠.. 이후..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언론사를 상대로 의도적으로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거부하며 의도적 외면을 했죠.. 보복행위라 받아들여졌었고요.. 즉.. 언론탄압으로 보여질 사례였습니다. 

 

거기다.. 가짜뉴스는 오히려 보수진영 쪽.. 극우세력들이 더 퍼트렸었습니다. 하지만 윤석열 정권은 그들에 대해 별다른 조치는 없었죠.. 아니 .. 당선인 시절에는 오히려 가까워서.. 그런 극우 유튜버들을 대통령 취임식에 초대를 했거나.. 그들의 가족을 보좌관으로 불러들이기도 했다 들켜.. 당사자가 스스로 나간 사례도 있었죠..

 

4.19 혁명때.. 당시 이승만 정권 때.. 오히려 언론사는 당시 정권에 대해 많은 비판을 쏟아 냈었습니다. 그래서 이승만 정권은 언론에 대해 탄압을 했죠.. 윤석열 대통령... 자신에 대해 불리한 보도를 한 언론사에 대해 강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이런 모습등이 왜인지 이승만 그림자와 윤석열 대통령과 겹쳐지는건 왜일까 싶네요..

1955년 동아일보 "괴뢰" 표기 오식사건
편집상의 실수로 대통령을 암시하는 단어인 "고위층" 앞에 북한을 암시하는 "괴뢰" 단어를 붙여버렸다. 200여 부가 인쇄된 후 부랴부랴 회수 및 폐기 처분했지만 이것만으로도 평소 눈엣가시였던 동아일보 하나쯤 보내버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결국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발행인 및 편집인을 불구속 입건했다.

1955년 대구 매일신문 테러 사건.
참고로 이 신문사는 같은 해 5월 20일에 "견통령 오식사건''을 일으켜 이미 높으신 분들의 응징을 받은 적이 있다.

'백주대낮의 폭력은 테러가 아니다.' 황당하지만 실제로 당시 경찰 당국의 발언이다.정치깡패들은 소재불명으로 처리되고 정작 폭력 행위를 경찰에 신고한 주필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1957년 (류근일) 필화사건

1957년 동아일보 "고바우 영감" 경무대 똥통 사건 필화사건

1958년 함석헌 필화사건

1958년 2.4. 국가보안법 파동
국가보안법의 3차 개정 과정에서 17조 5항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독소조항임을 발견, 이에 반발하는 야당 의원들을 무술 유단자들을 동원하여 한데 구겨넣어버리고 여당 의원들은 자기들끼리만 점심시간에 슬쩍 모여서 통과시켰다.

1959년 경향신문 폐간사건
이 사건은 미군정법령 88호 및 주한 미국 대사인 월터 다울링이 반대의견을 표명하기도 했다. 한편 경향신문사는 행정처분의 가처분 신청이 수용되었으나 이승만 정권은 일이 이렇게 되자 폐간을 철회하고 그 대신 무기발행정지 처분으로 응수했다.

당시의 시대상이 이와 같았고 이미 언론에 대한 탄압과 정치깡패를 동원한 테러행위, 날조 및 공작행위는 곪을 대로 곪아서 터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중이었다. 그리고 이들 언론을 구독하는 국민들은 점차 '민주주의 국가에서 용납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는 현실을 자각하고 있었다.

-나무위키-

이승만 정권 당시에도.. 지금과는 교육수준이 다르기는 하지만..교육열은 높았었고.. 의외로 정치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언론사의 보도를 보며 생각을 정리했었죠.. 그러다 원인이 되는 사건등으로 인해 촉발되어 결국 4.19 혁명이 일어난 것입니다.. 혁명이라 해서 좀 과격할지도 모르겠는데.. 대규모 집회입니다.. 어딜 습격하고 뭐 이런 사례가 나온게 아니죠.

 

그리고.. 당시에는 청년들의 실업율이 높았죠.. 그래서 청년들이 정권에 대한 불만이 높았었습니다. 현재의 대학과 당시 대학의 위치가 좀 다르겠지만.. 대학까지 나온 고급인력이 일할 곳이 없어 실업자로서 미래가 암담했었으니..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던 상황...

 

왠지 현재와 비슷한 상황인가 싶겠더군요.. 당시에는 50%의 실업율을 기록했고.. 현재는 그정도는 아니지만.. 일자리와 주거문제 때문에 불만이 커진 상황이죠..

 

마지막에.. 이승만 대통령은 초기 대통령시절과는 다르게...

이승만 대통령은 실세 2인자의 출현을 막고 정권의 핵심인물들간에 균형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심복이나 측근을 신뢰하지 않으면서 정권을 유지하였는데, 나이가 80대에 접어들자 판단력이 흐려졌는지 평소에 많이 접견하는 자유당의 고위인사들을 무조건 신임하게 되었으며 특히 대통령 경호를 책임지는 곽영주 경무관은 "부부통령"이라는 별칭이 붙여질 정도로 대통령의 신임을 마패로 삼아 각종 권력형 범죄를 저질러 물의를 일으켰고, 이는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가뜩이나 언론과 지식인, 대학생의 반정부가 높아지는 마당에 4.19 혁명으로 이어지는 기폭제가 되었다.

정권 후기에는 측근들을 무조건 적으로 신임하게 되고.. 그 측근들이 문제를 일으켜 결국 4.19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현재 윤석열 정권은 어떨까요.. 처음부터 학교.. 혹은 검찰시절 인연이 있는 이들을 주요 보직에 넣었습니다. 측근을 신임하고 측근들은 그런 신임을 바탕으로 권력을 행사하고 있죠.. 그리고.. 이태원 참사가 벌어졌을 때.. 행안부 장관이 한 행적을 생각하면.. 측근들이 일으키는 물의가 이제 시작인건가 생각할 법 하죠..

 

지금도 윤석열 대통령을 비판하는 집회는 벌어집니다. 결국 그런 집회등은 전조현상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여기서 국민들을 자극하는(그것도 않좋은 방향으로..) 사례가 발생한다면.. 4.19혁명과 비슷한 일이 벌어지지 말란 법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국민이 주인인 나라이며..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도 끌어내릴 수 있는 국가입니다.

 

즉.... 윤석열 대통령은 4.19 혁명 기념사를 하며.. 명백히 언론사등에 대해 칼날을 돌렸지만.. 그 칼날을 겨누는 모습에서.. 4.19 혁명의 칼날의 대상인 이승만 전 대통령을 상기시키는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차라리.. 4.19혁명을 기념하는 발언과.. 앞으로 있을 미국 방문일정에서... 대한민국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등의 내용으로 채웠다면 모르겠습니다. 괜시리 긁어 부스럼을 만든거 아닐까 싶네요..

 

이렇게 되면.. 윤석열 대통령은 방미일정에서.. 보따리를 가져오지 못한다면.. 아마 꽤 큰 곤혹을 치를것 같습니다. 지지율등에서 말이죠.

 

그리고.. 대통령실은 저 윤석열 대통령의 기념사를 작성한 이에 대해 문책을 하던지..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작성했다면 사전검토 및 건의를 안했다는 자책을 하길 바랄 뿐입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