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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논란거리/정치

이종찬 "국방장관 사퇴" 요구에… 신원식 "판단 능력 없는 광복회장이 사퇴하라"

by 체커 2023.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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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페이스북에 "구태 정치인 모습 같아"

 

3성 장군 출신인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이 이종찬 광복회장을 향해 사퇴를 요구했다. 국방부가 육군사관학교 내 홍범도 장군 등 독립군 5인의 흉상 이전을 추진하는 것과 관련해 이 회장이 이종섭 국방부 장관의 퇴진을 공개 요구하자 받아친 것이다.

신 의원은 27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에 "대한민국 정체성을 저버린 광복회장이야말로 판단하실 능력이 없다면 즉각 사퇴하라"고 썼다. 그는 "눈을 의심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회장께서 육사 24년 후배인 이 장관이 민족적 양심을 저버렸다고 하면서 사퇴를 촉구했다"면서 "무엇을 민족적 양심이라고 하시는지 잘 모르겠지만, 광복회장님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은 무엇인지 의문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신 의원은 흉상 이전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는 "소련 군인으로서 소련 군복을 착용하고 군모까지 쓴 홍범도 흉상을 육사에 설치하는 게 말이 되냐"며 "그것도 생도들이 매일 공부하러 가는 종합강의동 현관 앞에 설치했다. 생도들에게 공산주의자를 롤모델로 삼으란 소리냐"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광복회장님 논리대로라면 지금 정율성 역사공원 설치를 반대하는 사람들 모두 민족적 자존심을 버렸으니 사퇴해야 하는 거냐"고 적었다.

이 회장이 공개서한을 통해 이 장관의 사퇴를 촉구한 점도 비판했다. 신 의원은 "군의 대선배님이신 광복회장님께서 의견이 있으시면 후배인 육사 교장이나 국방장관을 만나서 얘기하는 게 옳지 않냐"며 "공개서한을 보내 언론의 주목을 끄시는 건 왠지 구태 정치인 모습 같아 참으로 씁쓸하다"라고 지적했다.

앞서 이 회장은 이 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민족적 양심을 저버린 귀하는 어느 나라 국방장관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면서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없으면 국방장관 자리에서 퇴진하는 것이 조국 대한민국을 위한 길"이라고 밝혔다.

김소희 기자 kims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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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이 선을 넘은것 같죠..

 

현재 육사에 설치된 흉상 홍범도, 김좌진, 지청천, 이범석, 이회영 흉상을 육사에서 이전할려 하죠..

 

[세상논란거리/정치] - 독립군 흉상 철거하는 육사…'홍범도' 잠수함은 어떻게?

 

그 이유에 대해.. 공산주의를 언급했습니다. 그들이 해온... 나라를 되찾기 위해 헌신했던 건 그냥 무시한 채 말이죠..

"소련 군인으로서 소련 군복을 착용하고 군모까지 쓴 홍범도 흉상을 육사에 설치하는 게 말이 되냐"

신원식 의원의 논리대로라면... 박정희 전 대통령은 뭘까요? 남로당에 가입한 걸 말이죠.. 그럼 현재 현충원에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결국 이장해야 할까요?

1946.12. 남조선로동당 입당, 군사총책

그리고.. 아마 자유시 참변에 관련되어 홍범도 장군에 대해 비난을 할지도 모르겠는데...

 

참고뉴스 : [팩트체크] 홍범도 장군이 독립군 몰살된 '자유시 참변'에 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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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 봉환 속 "참변 가담해 反공산주의 계열 독립군 학살" 주장 나와
"홍 장군, 독립군 신속한 통합에 관심"…'참변 가담' 기록 없어
참변 후 군사재판 참여 두고 왜곡 주장…'독립군 궤멸' 주장도 과장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항일 무장투쟁을 이끈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송환되면서 일부 보수성향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홍 장군이 독립군이 몰살된 '자유시 참변'에 가담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1921년 독립군 간 주도권 다툼으로 벌어진 자유시 참변에 홍 장군이 가담해 같은 독립군을 공격했다는 것이다.

자유시 참변은 당시 소비에트 러시아의 위성국가인 극동공화국 소재 스보보드니(자유시)에 모인 독립군이 세력간 주도권 다툼을 벌이다 일으킨 사건이라는 게 역사학계의 주된 해석이다.

 

유해 봉환을 비판하는 측은 홍 장군이 자유시 참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고, 극동공화국 군대와 함께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계열의 독립군을 학살한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 자유시 참변 원인은 이념 대립 아닌 독립군간 주도권 경쟁

홍 장군에게 자유시 참변에 책임이 있는지를 확인하려면 우선 자유시 참변이 발생한 원인을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봉오동전투와 청산리대첩 이후 일제의 독립군 탄압이 거세지자 연해주와 아무르주 지역에서 활동하던 상당수 독립군 부대가 1921년 1∼3월 자유시에 모여 독립군 통합을 논의했다.

일제와 적대관계인 소비에트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항일무장투쟁을 지속하겠다는 의도였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2017년 발간한 '독립군과 광복군 그리고 국군'을 보면 이때 모인 독립군 수가 2천∼2천300명 정도였다.

통합 논의 초기에는 러시아공산당 극동국(局)이 지원한 대한의용군이 통합 주도권을 쥐었으나, 1921년 4월 '극동지역 볼셰비키 혁명사업'이 러시아공산당에서 코민테른으로 이관되면서 코민테른 극동비서부의 지원을 받은 고려혁명군에게 주도권이 넘어갔다.

이후 통합 조건을 두고 대한의용군과 고려혁명군이 좀처럼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1921년 6월 28일 더는 독립군 통합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극동공화국 군대가 자유시 치안유지 명목 등으로 대한의용군을 강제로 무장해제 시키는 과정에서 무력충돌이 발생했다.

당시 주도권을 쥔 고려혁명군 주력부대인 오하묵, 최고려 등이 이끄는 한인자유보병대대가 극동공화국 군대와 함께 대한의용군을 상대로 전투를 벌였다는 주장도 있지만 공식적인 자료는 없다.

즉 자유시 참변이 독립군 간 주도권 경쟁이 원인이 돼 벌어진 참사는 맞지만, 공산주의 계열 독립군이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계열의 독립군을 학살했다는 해석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자유시에 모인 독립군은 공산주의 계열 독립군이거나, 적어도 러시아 공산당 또는 코민테른의 지원을 받아 항일무장투쟁을 이어가려는 독립군이었고 참변의 원인도 이념 대립이 아닌 독립군 주도권 다툼이었던 것이다.

독립군 연구의 대가인 반병률 한국외대 사학과 교수는 19일 연합뉴스에 "당시 국제정세상 독립군이 항일무장투쟁을 이어가려면 소비에트 러시아의 지원이 필요했고 그래서 많은 독립군이 자유시에 모였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복잡하게 얽힌 당시의 정황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은 왜곡된 주장(이념 대립)으로 국민을 오도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 홍 장군 자유시 참변 가담 기록 전혀 없어…"참변에 통곡" 증언

홍 장군이 자유시 참변 과정에서 고려혁명군 편에서 대한의용군 소속 독립군을 학살했다는 주장도 낭설에 가깝다.

1921년 3월께 자유시에 도착한 홍 장군은 당시 주도권을 쥔 대한의용군 중심의 독립군 통합에 찬성했다가, 이후 주도권이 고려혁명군으로 넘어가자 1921년 5월 기존 태도를 바꿔 고려혁명군 중심의 통합에 힘을 실었다.

양측 모두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던 홍 장군으로서는 통합 주도권의 향방엔 관심이 없었고 하루라도 빨리 통합이 마무리돼 항일무장투쟁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게 역사학계의 해석이다.

공식 사료에도 홍 장군의 부대가 자유시 참변에 가담했다는 기록은 전혀 찾을 수가 없다.

참변 이후 포로로 잡힌 대한의용군 독립군에 대한 군사재판에 재판위원으로 참여한 기록은 있지만, 이는 신속한 사태수습을 원한 고려혁명군 측이 독립군 사이에서 명망이 높은 홍 장군을 재판위원으로 추대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자유시 참변 연구 권위자인 윤상원 전북대 사학과 교수는 연합뉴스에 "홍 장군이 고려혁명군 중심의 독립군 통합에 찬성하고, 참변 이후 벌어진 군사재판에 재판위원으로 참여했다는 이유로 자유시 참변에 가담했다는 왜곡된 주장이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홍 장군의 부대가 자유시 참변에 가담했다는 기록은 전혀 없고, 오히려 참변 당시 홍 장군이 휘하 장교들과 인근 솔밭에 모여 땅을 치며 통곡했다는 증언만 있다"고 설명했다.

 

◇ 자유시 참변으로 독립군 궤멸했나

보수성향 커뮤니티들에선 또 자유시 참변으로 자유시에 모였던 2천여명의 독립군 중 700∼800명이 사망해 사실상 독립군이 궤멸했다는 주장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국방부 군사편찬위원회가 발간한 '독립군과 광복군 그리고 국군'을 보면 가해자 측인 고려혁명군의 주장으론 사망자가 36명, 피해자 측인 대한의용군의 집계로는 전투 중 사망, 익사, 행방불명 인원이 총 600여명이다.

또 참변 이후 포로로 잡힌 대한의용군 소속 군인이 864명이라는 기록을 고려하면 사망자가 700∼800명이라는 주장은 더욱 설득력이 떨어진다. 당시 대한의용군 병력이 1천명 내외라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윤상원 교수는 "자유시 참변 이후에도 고려혁명군 중심으로 모인 독립군이 연해주 등지에서 활동했다"면서 "정확한 사상자 수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독립군이 궤멸한 수준은 아니다"고 말했다.

hyun@yna.co.kr

모른체 했다는 주장에 설득력이 있지만..정작 참변 소식에 통곡을 했다는 홍범도 장군이었습니다. 홍 장군이 직접 부대를 이끌고 독립군을 공격했다는 정황은 없습니다.. 소련의 공산당에 가입을 했지만.. 정작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되어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죠.. 한국전쟁에 개입할 여지는 없고요..

 

따라서.. 과거 소련 공산당에 가입을 했지만.. 그가 한국의 독립을 위해 싸워온 행적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건국훈장을 받을 공적을 세운 것도 부정할 수 없죠..

 

그리고.. 육사에서 이전을 결정한 흉상은 홍범도 장군의 흉상만이 아닙니다. 김좌진, 지청천, 이범석, 이회영 흉상도 이전합니다..

 

왜 홍범도 장군 흉상 이외 다른 흉상 이전은 신원식 의원은 언급조차 안할까요.. 나머지 인사들은 모두 반공노선을 걷던 인물들인데?

 

그래서.. 신원식 의원은 선을 넘었다 생각합니다. 거기다 과거의 독립운동을 한 이들을 부정했고요.. 3성 장군 출신인데.. 아무래도 신원식 의원은 일본 출신이어서 그런가 봅니다. 그렇다면.. 독립운동과 독립전쟁을 한 한국의 영웅들은 그의 눈에는 눈의 가시처럼 느껴지겠죠.

 

그리고 뉴라이트 사관을 가진 것으로 의심되는 신원식 의원입니다.

 

더욱이 여당내에서도 반발하는 사안인데도 말이죠. 신원식 의원.. 곧 다가올 총선에 공천받고 싶어서인가 싶기도 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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