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논란거리/사회

5.18 공수부대원이 시민 장갑차에 깔렸다?

by 체커 2019. 4. 23.
반응형

다음

 

네이버

 

1980년 5월 21일 오후 1시 광주 전남도청 앞, 계엄군이 시민들을 향해 집단발포를 시작했다. 당시 여기서 유일하게 목숨을 잃은 공수부대원이 1명 있다.

 

▲서울 현충원에 안장된 권용운 일병의 묘

11공수여단 63대대 소속 권용운 일병이다. 권 일병은 장갑차에 깔려 사망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국가기관의 모든 공식기록에는 권 일병이 돌진하는 시위대의 장갑차에 깔려 숨졌다고 돼 있다. 당시 육군본부 기록은 물론 1995년 검찰의 5.18 수사발표 기록도, 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보고서도 마찬가지다.

권 일병의 사망 원인은 전두환의 내란혐의 입증에 주력했던 검찰과 발포명령자 조사에 치중했던 국방부 과거사위에서 큰 관심을 끌지 못했기 때문에 1980년 신군부의 입맛대로 작성된 육군본부 기록과 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공수부대원 최초로 양심선언한 이경남 목사는 이미 1999년 <당대비평>에 기고한 글에서 권 일병이 계엄군의 장갑차에 깔려 숨지는 것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이 목사의 증언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권 일병의 사망 사건은 5.18의 진실을 왜곡하려는 세력들에게 악용되고 있다.

극우논객 지만원 씨는 “시위대의 장갑차가 지그재그로 돌진해 병사 1명을 깔아죽였다”고 주장하고 있고, 전두환 씨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권 일병이 시위대의 장갑차를 미처 피하지 못해 숨졌다고 적었다. 계엄군의 집단발포가 위급한 상황 때문이었다는 것을 정당화하려는 근거 가운데 하나로 권 일병 사건이 악용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최근 5.18 왜곡을 팩트체크하는 언론사 기사에서도 권 일병이 시위대 장갑차에 깔려 죽었다고 언급되고 있는 실정이다.

2018년  5.18단체들이 제기한 전두환 회고록 손해배상 민사소송 1심에서 광주지방법원은 권 일병 사건을 허위사실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전두환 씨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전두환씨 회고록 1권 470쪽

이경남 목사의 글이 증거로 제출됐지만 허위사실이라는 것을 입증하기엔 불충분하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과연 이를 목격한 사람이 이경남 목사 밖에 없었을까?

이경남 목사는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권 일병이 사고를 당한 위치와 상황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했다. 사망 위치는 당시 YMCA건물 앞 쪽으로 62대대가 서있던 장소라는 것이었다.

 

▲당시 시위대가 아시아자동차에서 가져온 장갑차는 도시형 장갑차로 바퀴가 달려있는 반면 계엄군이 광주 기갑학교에서 차출한 장갑차는 궤도형 장갑차였다. 이 목사는 권 일병이 계엄군 장갑차의 궤도에 깔리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이 목사는 공수부대원의 잔혹한 진압에 분노한 시위대가 차량 등을 이용해 돌진해오는 상황에서 뒷편 도청방향으로 병사들이 후퇴하고 있었기 때문에 권 일병이 숨지는 순간을 직접 본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취재진은 과거 수사기록과 국방부 조사기록 등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이 목사와 같은 내용으로 진술했던 계엄군들의 자료를 다수 확보했다.

보안사가 마이크로필름 형태로 보관하고 있던 자료 속에서 발견된 11공수 63대대 이 모 대위의 진압작전 수기를 보면 “폭도가 홍수처럼 달려들어 왔으며 이때 밀릴 때 후진하는 APC(장갑차)에 뒤에 있던 63대대 병력 1명이 깔렸으며”라고 기록돼 있다. 이 대위는 이경남 목사와 같은 지역대 소속이어서 비슷한 위치에서 사고 현장을 목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11공수단원 이 모 대위의 진압작전 수기 중 일부. 후진하는 APC(장갑차)에 뒤에 있던 병력이 깔렸다고 기록돼 있다.

취재진은 이밖에도 61대대 1지역대의 김 모 중대장의 95년 검찰조사 진술 조서와 62대대장 무전병 박 모 일병의 2006년 국방부 과거사 조사기록도 입수했는데 여기에는 모두 ‘화염병 투척 후 후퇴하는 장갑차에 휴식하던 병사 2명이 우리측 장갑차에 깔린 것’으로 진술돼 있었다.

 

▲당시 공수부대는 기갑학교에서 지원나온 장갑차 2대를 앞에 두고 시위대와 대치했는데 오른쪽 전일빌딩 쪽으로 61대대, 왼쪽 YMCA 건물 쪽으로 62대대가 배치됐고 그 바로 뒷편에 63대대가 배치돼 있었다.

특히 62대대 소속이었던 한 모 일병은 과거사위 조사에서 사망 위치까지 특정해 진술했다. 권 일병이 수협 앞에서 사망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사라진 수협 건물은 YMCA 바로 아래쪽에 있던 건물로 이경남 목사가 진술한 권 일병의 사망 위치와 거의 일치한다.

 

그렇다면 공수부대를 향해 돌진했다는 시위대의 장갑차는 어디로 향해간 것일까?

 

▲1980년 5월 21일 대치상황. 시위대의 장갑차가 왼편에 모습을 드러냈다.

도청을 사수하다 체포돼 재판에 넘겨진 이관택 씨의 재판기록을 보면 21일 현장에서 시위대의 장갑차는 수협 건너편 쪽으로 분수대를 돌아나간 것으로 표시된 상황도가 나온다.

 

이같은 상황을 종합하면 권 일병은 YMCA쪽에 배치된 62대대 대열에 있던 계엄군의 장갑차가 후진하면서 수협 앞에서 사망했고 시위대 장갑차는 그 건너편 쪽으로 분수대를 돌아나간 것으로 정리된다.

당시 현장에 있던 여러 계엄군이 이야기하는 사망 위치와 상황이 이 목사의 진술과 일치한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권 일병 사망사건은 당시 계엄군과 시위대가 대치한 긴박한 상황에서 일어난 비극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80년 신군부에 의해 유포된 이른바 ‘광주교소도 습격 사건’처럼 이 사건 또한 5.18 항쟁을 폄훼하는 세력들에게 지금까지도 역사왜곡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5.18진상규명위원회의 정확한 진상규명이 필요한 사안들 가운데 하나다.

취재: 최기훈 
촬영: 김기철 이상찬
편집: 정지성
CG: 정지성 이도현

최기훈 기자 bluemango@newstapa.org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유일하게 계엄군이 사망한 공수부대원이 계엄군 장갑차에 깔려 죽었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계엄군과 시민군이 가지고 있었던 장갑차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계엄군은 무한궤도.. 시민군은 바퀴가 달려 있군요....

 

5.18을 폭동이라 주장하는측에서는 사망한 공수부대원이 시민군의 장갑차에 깔려 죽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경남목사를 포함한 광주시민과 단체들은 공수부대원이 계엄군 장갑차에 깔려 죽었다고 주장합니다.

 

누구말이 맞을까요?

 

무한궤도에 사람이 깔리면 어찌되는지는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미군 장갑차에 깔려죽은 미선이와 효순이를 알고 있으니까요..

 

사실... 깔려 죽은 공수부대원의 시신상태를 알 수 있는 사진만 있다면 금방 증명되는 상황이라 생각합니다.

 

무한궤도로 깔린 상태와 타이어로 깔린 상태는 엄연히 다르니까요.. 하지만 이미 늦었고.. 해당 시신을 찍은 사진도 없는 상태여서 증명하기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5.18 진상규명위원회가 빨리 구성되어 본격적인 조사가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오래된 논란이니만큼 밝혀내기는 힘들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예 모른척 하기엔 가짜뉴스들이 여기저기 난무를 하여 왜곡되는 터라 빨리 규명이 되었으면 좋겠군요..

 

해당기사의 각 포털별로 덧글을 보면 극명하게 갈려서 주장합니다. 사실이 밝혀져서 논란이 가라앉았으면 좋겠습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