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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논란거리/국제

日 사도광산 '단독 추천' 결정.."강제동원 언급 검토 계획 없다"

by 체커 2021.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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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일본 사도광산의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 명부와 생활 흔적들, 단독 보도로 전해드렸죠.

일본 문화청이 어제 사도광산을 세계유산 후보로 선정해 등재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현지에서 일본 측 핵심 관계자는 "조선인 강제 동원 언급 여부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KBS에 밝혀 파장이 예상됩니다.

지종익 특파원의 단독 보도입니다.

[리포트]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이 강제동원된 일본 사도광산의 근대기 갱도.

백여 년 간 채굴이 이뤄진 갱도를 따라 설명글과 사진 전시가 이어집니다.

[나하타 쇼/사도광산 주임보 : "이게 광차가 달린 레일입니다. (이렇게 쭉 달린 건가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태평양전쟁 당시 전쟁물자 확보를 위해 조선인들이 강제 동원됐다는 사실은 언급이 없습니다.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해 온 일본 니가타현은 강제동원 언급 여부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KBS에 밝혔습니다.

[오다 유미코/니가타현 세계유산등록추진실장 : "(조선인 강제동원 언급 여부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거기까지는 검토하고 있지 않은 겁니까?) 그렇습니다. 사도시와 니가타현에서는 아직 검토하지 않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가 결정해야 될 문제라고 선을 긋습니다.

[오다 유미코/니가타현 세계유산등록추진실장 : "외교상 문제이기 때문에 정부가 담당할 수밖에 없겠죠. 일개 자치단체 직원으로서 답하기는 곤란합니다."]

일본 문화청은 사도광산이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며 세계문화유산 단독후보로 선정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강제동원 현장의 세계유산 등재 문제가 군함도에 이어 한일 간 민감한 현안으로 작용하는 데다, 이번에도 신청 대상 기간에서 일제강점기를 제외해 강제동원 관련 기술은 누락될 우려가 한층 커졌습니다.

일본정부는 조만간 유네스코에 정식으로 추천서를 낼 예정입니다.

또 하나의 강제동원 현장인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여부는 2023년에 결정됩니다.

우리 외교부는 군함도에 이은 사도 광산의 등재 추진을 즉각 철회하라며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장을 초치해 항의했습니다.

사도섬에서 KBS 뉴스 지종익입니다.

촬영기자:안병욱/영상편집:이현모/그래픽:김지훈

지종익 기자 (jigu@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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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사도광산을 세계유산등재를 하기 위해 추천서를 보낼 예정이라 합니다..

 

사도광산..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의 사도 섬에 위치한 광산입니다. 일본의 에도 시대에 개발되었던 곳입니다. 처음에는 일본인들로 구성된 광부들이 일하다.. 한일합병이 진행된 이후.. 조선인들이 동원된 광산입니다.

 

조선인을 동원할 때.. 자유모집 형태로 모집했다 나중에 징용이었다는걸 당사자들은 현장에 와서 깨달았다는 증언이 있습니다.

 

즉.. 사도광산에서 일했다는 조선인.. 한국인의 증언이 있는 상태.. 당사자는 결국 사망했지만.. 다행히도 미리 증언을 녹음하여 증거를 확보한 상태입니다.

 

참고뉴스 : 일본 사도광산 징용 피해자 구술 "하루하루가 공포 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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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니가타현에 있는 사도(佐渡)광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올릴 후보로 선정하기로 하면서 한·일간 새로운 갈등 이슈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일, 군함도 이어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

군함도의 하시마 탄광과 마찬가지로 금과 은을 캤던 사도광산 역시 우리 징용 노동자들이 강제동원된 아픔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2015년 군함도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강제노역 사실을 알리고 희생자를 추모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 약속은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일본이 니가타현에 있는 사도(佐渡)광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올릴 후보로 선정하기로 하면서 한·일간 새로운 갈등 이슈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일, 군함도 이어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

군함도의 하시마 탄광과 마찬가지로 금과 은을 캤던 사도광산 역시 우리 징용 노동자들이 강제동원된 아픔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2015년 군함도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강제노역 사실을 알리고 희생자를 추모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 약속은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도광산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2019년 발간한 정혜경 ARGO인문사회연구소 책임연구원의 '일본지역 탄광·광산의 조선인 강제동원 실태 -미쓰비시광업(주) 사도광산을 중심으로' 보고서를 보면 당시 참상을 일부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논산 출신 징용 피해자 임태호씨 구술 기록이 유일

현재까지는 1919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1940년 11월 사도광산에 동원됐던 임태호씨가 사망 직전 남긴 구술 기록이 유일합니다.

임씨는 일본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에서 살다가 1997년 9월 사망했습니다.

"자유 모집으로 생각했지만 도착하자 징용 사실 알아"

임씨는 1940년 11월 '자유 모집' 형태로 생각했지만 도착하자 '징용'이란 사실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지하에서 하는 작업은 죽음을 맞닥뜨리는 일이었으므로 하루하루가 공포 그 자체였다. 매일 같이 낙반 사고가 있어서 '오늘은 살아서 이 지하를 나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마음을 졸이고 살았다. 사망자에게 인간 대접이라는 것은 없었고 아무런 조의도 없었다."

임씨는 살아남았지만 큰 부상은 피하기 어려웠습니다.

"병원도 못 가고 다시 일터로 돌아가야"

"지하에서 작업 중에 하시고(발판)가 떨어져 큰 부상을 입고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정신이 든 곳은 병원이 아니라 함바(노동자 숙소)의 이부자리였다. 허리를 강하게 맞아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병원에도 가지 못하고 열흘 정도 누운 채 지냈다. 간신히 일어날 수 있게 되자 다시 일터로 돌아가야 했다. 병에 걸려도 이틀 이상은 쉴 수 없는데 열흘이나 일하지 않았으므로 더 이상 일하지 않는다는 것은 절대로 용납되지 않았다."

여러 차례 부상을 당했던 임씨는 결국 광산을 탈출했습니다.

"살아있는 동안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죄 요구했지만…"

임씨는 구술을 마치며 일본 정부의 사죄를 요구했습니다.

"전후 반세기 이상(구술 당시 1997년)이 지났으나 오늘날에도 여전히 일본 정부로부터 진심 어린 말 한마디를 들은 적이 없다. 죽은 동료들도 지금은 모두 성불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나와 같은 경우에 있었던 사람들이 한 사람이라도 살아있는 동안에 성의있는 진정한 사죄를 받기를 원한다."

정부, 사도광산 징용 피해자 1200명 추정

정부는 2차 세계대전 무렵 사도광산에 동원된 우리 징용 노동자들이 1200명 정도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거기다.. 사도광산을 운영하는 측에서 조선인들에게 미지급된 급여에 관한 기록도 발견되었습니다. 그 미지급금.. 모두 일본 정부의 국고로 환수된 상태입니다.

 

참고뉴스 : 세계유산 도전 日사도광산 조선인 1천140명 미지급금 기록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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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급 조선인 임금 공탁 기록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일본 니가타(新潟)노동기준국이 작성한 공문서(사본)인 '귀국 조선인에 대한 미불임금채무 등에 관한 조사에 관해'(우측 붉은 네모)에 1949년 2월 25일에 1천140명에 대한 미지급 임금(미불임금)으로 23만1천59엔59전(왼쪽 붉은 네모)이 공탁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 사진은 고바야시 히사토모(小林久公) 강제동원 진상규명 네트워크 사무국 차장이 제공한 자료를 기재 내용의 변동을 초래하지 않는 범위에서 재가공해 촬영한 것임.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일본이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 등록 후보로 추천할 가능성이 상당한 사도(佐渡)광산에서 강제노역한 조선인이 1천명을 훌쩍 넘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일본 공문서가 존재하는 것으로 21일 파악됐다.

특히 이들이 월급도 제대로 받지 않은 사실이 공문서로 확인됐다.

일본 니가타(新潟)노동기준국이 작성한 공문서인 '귀국 조선인에 대한 미불임금채무 등에 관한 조사에 관해'를 연합뉴스가 확인해보니 1949년 2월 25일에 1천140명에 대한 미지급 임금으로 23만1천59엔59전이 공탁된 것으로 기록돼 있었다.

채무자는 다이헤이(太平)광업주식회사 사도 광업소 측이고 공탁 기관은 니가타 사법사무국 아이카와(相川)출장소였다.

이 문서는 니가타노동기준국이 1950년 10월 31일 당시 노동성 노동기준국장에게 보고하기 위해 작성한 것이며 일본 국립공문서관에 보관돼 있었다.

고바야시 히사토모(小林久公) 강제동원 진상규명 네트워크 사무국 차장이 과거에 확보한 자료를 최근 검토하는 과정에서 문서에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그가 일본 법무성의 지역 사무소인 니가타(新潟)지방 법무국을 통해 최근 확보한 공문서에서도 동일한 날짜에 같은 금액이 공탁된 것으로 확인된다.

'공탁원부' 및 '금전 공탁 원장'에는 1949년 2월 25일 '임금과 퇴직금 변제'를 이유로 23만1천59엔59전이 공탁됐다고 수입 항목이 적혀 있다.

미지급 임금 공탁금 기록…일본 국고 편입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일본 니가타(新潟)지방 법무국이 최근 공개한 '공탁원부'(사본)에 1949년 2월 25일 23만1천59엔59전이 공탁됐다(상단 붉은 밑줄)는 내용이 적혀 있다.

니가타지방 법무국이 개인 정보라며 문서에 일부 먹칠을 한 탓에 공탁금 지정 수취인이 '■■■■(문자 수 미상) 외 1천140명'으로만 확인된다.

두 문서 간 인원에서 1명의 차이가 나지만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일본 당국은 공탁금의 시효가 완성된 것으로 간주해 1959년 5월 11일 공탁금을 국고에 편입한 것으로 기재돼 있다.

미불금 공탁했다가 국고 편입한 일본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일본 법무성의 지역 사무소인 니가타(新潟)지방 법무국이 최근 공개한 공문서인 '금전 공탁 원장'에 1949년 2월 25일 '임금과 퇴직금 변제'(붉은 네모)를 이유로 23만1천59엔59전이 공탁됐다고 기재돼 있다.

고바야시 차장은 "민사 공탁을 하려면 당사자(채권자)에게 공탁한다는 통지를 해야 하는데 이런 절차를 밟지 않았으므로 법률적으로 성립된 공탁이라고 말하기 어렵다"며 일본 측의 대응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제 강점기 사도 광산에 동원됐던 조선인 생존자가 있다면 당시의 체험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세계유산등재 노리는 일본 사도 광산 (니가타 교도=연합뉴스) 2021년 8월 19일 일본 니가타(新潟)현 사도(佐渡)시에 있는 '사도시마노킨잔'(佐渡島の金山·이하 '사도 광산'으로 표기)의 도유(道遊)갱 내부에 조명이 밝혀져 있다. 일본 니가타현과 사도시는 사도 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이며 일본 문화심의회가 일본 후보를 선정하기 위해 현재 심사 중이다.

사도 광산에 동원된 조선인에 관해 연구한 히로세 데이조(廣瀨貞三) 일본 후쿠오카(福岡)대 명예교수는 이들 문서에 관해 "미쓰비시(三菱)광업 사도 광업소 이외의 곳에서 나온 새로운 숫자"라며 '적어도 2천명 정도'로 추정되는 사도 광산의 조선인 노동자 중 1천141명이 사료로 증명된 셈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공문서가 보여주는 조선인 미불임금…공탁 기록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일본 니가타(新潟)노동기준국이 작성한 공문서(사본)인 '귀국 조선인에 대한 미불임금채무 등에 관한 조사에 관해'에 1949년 2월 25일에 1천140명에 대한 미지급 임금(미불임금)으로 23만1천59엔59전(왼쪽 붉은 네모)이 공탁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일본 문화심의회는 니가타현 사도시에 있는 '사도시마노킨잔'(佐渡島の金山, 일명 사도 광산)을 일본 정부가 세계유산으로 유네스코(UNESCO)에 추천하도록 할지 심사 중이다.

sewonlee@yna.co.kr

 

따라서.. 강제징용에 관련되어 객관적 증거도.. 당사자의 증언도 모두 있는 상태이기에.. 일본으로선 강제징용사실을 부인하기 어려운게 현 상황입니다.

 

그래서 일본정부는 편법을 썼는데.. 조선인 강제징용 시절을 제외한... 광산개발 초기 운영한 때만 언급하고 취급해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를 시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한국정부는 일본의 이러한 문화유산등재 신청에 대해 일본대사관 대사를 초치라고 항의를 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일본은 강행하겠죠.. 관련해서 객관적 증거와 지금은 고인이 된 당사자의 증언등을 유네스코에 알려 안된다고 입장을 밝힐 겁니다. 그럼에도 유네스코는 사도광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를 한다면.. 이전 군함도 논란도 그렇고.. 유네스코는 일본에 대해 그저 일개 단체일 뿐이라는걸 자인하는 것 아닐까 싶네요.

 

강제징용.. 현재 법원에서 일본기업의 패소로 결정되었지만 배상은 안하고 버티고 있다죠.. 그걸 빌미로 한국에는 현재 수출규제로 보복중이고요. 군함도에 대해 강제징용 관련 사실을 인정하고 공개하며.. 방문객들에겐 안내도 하겠다 했지만.. 등재 이후.. 그 내용은 사라진 상태라는건 이제 많은 이들이 알고.. 유네스코를 일본이 이용해먹었다는 것도 알죠..

 

그럼에도 유네스코가 일본이 원하는대로 해준다면.. 글쎄요.. 유네스코가 무슨 단체인지 알 필요도.. 그들이 하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가져줄 이유는 아마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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