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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논란거리/사회

"노동운동하다 자백 후 대공특채까지"..경찰국장의 수상한 1989년

by 체커 2022.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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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전국 경찰서장 회의와 1인 시위, 삭발식 등 일선 경찰들이 강하게 반발하는 진통을 겪은 끝에 지난 2일 행정안전부 경찰국이 출범했습니다.

행안부 경찰국의 초대 수장인 김순호 국장은 지난 1989년 '안보 특채'로 경찰이 됐는데 YTN 취재 결과 당시 '대공공작업무 관련자'로 특채 대상에 포함된 거로 확인됐습니다.

김 국장은 YTN 취재진과 직접 만나 노동운동을 하다가 자수해 과거 행적을 자백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준엽 기자가 단독 보도합니다.

[기자]

지난 1991년 치안본부가 경찰청으로 독립한 지 31년 만에 행정안전부 경찰 관련 조직으로 출범한 '경찰국'.

초대 국장으로는 경찰청 안보수사국장 출신 김순호 치안감이 임명됐습니다.

그런데 40여 년 전으로 시계를 되돌리면 김 국장은 이른바 '안보통'인 지금과는 사뭇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김 국장은 지난 1983년 3월, 운동권 서클에 가입해 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군대에 강제징집됐습니다.

학생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전두환 정권이 벌인 이른바 '녹화사업' 피해자였던 겁니다.

같은 해 11월에는 국가보안사령부에 끌려가 심사를 받고 중간 등급인 'B급' 관리대상으로 1502번 관리번호가 부여됐습니다.

이후 김 국장은 공장에 위장 취업했고, 서클 선배 최동 씨를 따라 '인천·부천 민주노동자회', 이른바 '인노회'에 가입했습니다.

'김봉진'이란 가명을 쓰며 부천 지역 조직책임자인 지구위원 직위도 맡았습니다.

그런데 지난 1989년 2월 인노회가 느닷없이 이적단체로 낙인찍히고 부천 지역에서는 일반 회원들까지 줄줄이 구속됐습니다.

그 무렵 김 국장은 돌연 잠적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반년 만에 '대공 특채'로 경찰관이 돼 돌아왔습니다.

첫 부임지는 인노회 사건을 수사한 바로 그 부서, 치안본부 대공수사 3과였습니다.

YTN 취재결과 김 국장은 대공공작업무 관련자로 분류돼 특별채용 자격을 얻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또 과거 정부가 녹화사업 자료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1983년 강제징집 당한 김 국장이 대공 업무에 활용된 적이 있는 것으로 분류된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노동운동 경력과 갑작스러운 잠적, 대공공작업무 관련자로 경찰 대공 특채까지 이례적인 행보입니다.

YTN 취재진은 김순호 국장을 만나 인노회 사건 때 잠적한 뒤 갑자기 경찰관이 된 배경에 대해 직접 물어봤습니다.

김 국장은 인노회 사건이 터진 지난 1989년 초쯤 북한의 주체사상에 물들어가는 운동권 흐름에 회의를 느껴 고향으로 내려갔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고시 공부를 하다가 내적 갈등이 심해져 같은 해 7월쯤 직접 서울 홍제동 대공분실을 찾아가 인노회 사건 책임자에게 그동안의 활동을 자백했다는 겁니다.

당시 경찰 책임자가 사흘 동안 조사하면서 주사파에 물들까 걱정된다는 고백을 들은 뒤 역으로 '대공 특채'를 제안하면서 곧바로 경찰의 길을 걷게 됐다는 게 김 국장의 주장입니다.

하지만 '자기 고백'을 할 때 인노회 동료들이 구속되거나 수사에 영향을 끼칠 진술은 전혀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습니다.

또 녹화사업 당시 공작 활동과 관련해선 누굴 만난 뒤 보고하라는 지시를 받긴 했지만, 친구들과 술 마신 내용 등만 보고해 별일은 없었다고 덧붙였습니다.

YTN 이준엽입니다.

YTN 이준엽 (leejy@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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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경찰을 장악하기 위함이라는걸 다른 이들도 판단되고 있는 경찰국에 대해... 행안부가 경찰국을 통해 경찰을 장악하지 않으며.. 경찰국에는 경찰 소속이 들어가고.. 행안부 소속은 1명밖에 없다고 항변했는데..

 

왜 그리 자신있게 항변했는지 알 수 있네요.. 행안부.. 정권에 충성을 다하는 이가 들어갈 것이니.. 경찰국을 통해 일일히 통제할 필요 없이.. 윤석열 정권에 충성을 다하는 경찰을 넣으면 그만이니까요..

 

경찰국이 만들어지고.. 첫 경찰국장이 지명되었는데.. 옛 행적이 의심되는 부분이 있다고 합니다.

이후 김 국장은 공장에 위장 취업했고, 서클 선배 최동 씨를 따라 '인천·부천 민주노동자회', 이른바 '인노회'에 가입했습니다.

'김봉진'이란 가명을 쓰며 부천 지역 조직책임자인 지구위원 직위도 맡았습니다.

그런데 지난 1989년 2월 인노회가 느닷없이 이적단체로 낙인찍히고 부천 지역에서는 일반 회원들까지 줄줄이 구속됐습니다.

그 무렵 김 국장은 돌연 잠적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반년 만에 '대공 특채'로 경찰관이 돼 돌아왔습니다.

첫 부임지는 인노회 사건을 수사한 바로 그 부서, 치안본부 대공수사 3과였습니다.

내용대로라면.. 거래를 통해 동료들을 경찰들에게 넘기고.. 본인은 나중에 그 보상으로 대공특채로.. 동료들을 수사했던 그곳에 경찰관으로서 취업을 했고.. 지금껏 이득을 봐왔다고 하니... 거기다 윤석열 정권의 행안부는 경찰을 통제하는 경찰국의 첫 국장으로는 딱 맞는 인사를 넣었으니 그리도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자신있게 항변한거 아닐까 싶죠..

 

경찰국장이 알아서 할테니 말이죠.. 거기다..경찰국장이 과거 자신의 동료들을 밀고한걸 자백을 했네요.. 

이후 고시 공부를 하다가 내적 갈등이 심해져 같은 해 7월쯤 직접 서울 홍제동 대공분실을 찾아가 인노회 사건 책임자에게 그동안의 활동을 자백했다는 겁니다.

당시 경찰 책임자가 사흘 동안 조사하면서 주사파에 물들까 걱정된다는 고백을 들은 뒤 역으로 '대공 특채'를 제안하면서 곧바로 경찰의 길을 걷게 됐다는 게 김 국장의 주장입니다.

하지만 '자기 고백'을 할 때 인노회 동료들이 구속되거나 수사에 영향을 끼칠 진술은 전혀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습니다.

자백을 하면서.. 동료들이 구속되거나 수사에 영향을 끼칠 진술은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결과는 구속되거나 수사에 영향을 줬죠..

그런데 지난 1989년 2월 인노회가 느닷없이 이적단체로 낙인찍히고 부천 지역에서는 일반 회원들까지 줄줄이 구속됐습니다.

따라서.. 본인은 아니라고 주장하나.. 동료 팔아먹은건 확인이 된 셈이 됩니다.. 배신자로서 확인이 된 건데..

 

정치계라는 것이... 배신자에 대해선 끝까지 데려가지 않죠.. 윤석열계에선 자신들에게도 언제 배신을 할지 알 수 없을테니...

 

아마도.. 저 초대 경찰국장.. 실컷 이용당하고 나중엔 잊혀지지 않을까 싶긴 합니다.. 뭐 경찰국장 본인이 욕심이 없어 정치쪽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경찰국장을 마지막으로 경찰직에서 퇴직한다면야 문제가 되진 않겠지만.. 그러진 않을듯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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