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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논란거리/정치

'문건 논란' 속 경수로는 북한 오랜 염원.."비핵화 협상카드"

by 체커 2021.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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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3월 당시 공개된 북한 경수로 건설 공사 현장 모습. / 사진 = 연합뉴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의 문건 삭제 논란을 계기로 과거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실제 북한 원전 건설이 추진됐던 사례들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습니다.

오늘(31일) 외교안보 전문가들의 설명을 종합해보면 만성 전력난에 시달려온 북한에 원자력 발전소 건설은 김일성 주석 생전의 필생 사업이었습니다.

'자력갱생'을 경제발전 기조로 삼아온 북한으로서는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석유를 대체할 원전 건설이 간절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실제 북한은 1980년대 소련과 원자력 협정을 맺고 실험용 원자로를 들여왔으나 이후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을 강요받자 1989년 가입 서명을 거부하고 원자로 가동도 중단했습니다. 이어 그해 말부터 소련의 붕괴가 현실화하면서 소련과의 원전 건설 추진은 아예 수포가 됐습니다.

그러다가 북한 원전 건설이 비핵화 협상카드로 본격 등장한 건 1994년 10월 제네바합의 때입니다. 당시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신 북한에 경수로를 지어주고, 경수로가 완공될 때까지는 중유를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이후 경수로 발전소의 핵심인 원자로를 한국 표준형으로 확정 짓는 데 1년 넘는 치열한 협상 과정을 거쳤고, 1995년 12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와 북한이 마침내 경수로제공협정에 서명합니다.

1997년 8월 함경남도 금호지구(신포)에서 착공식을 시작으로 정지공사와 금호항·여객터미널 공사 등을 차례로 마무리 짓고 2002년 1·2호기의 콘크리트 타설 작업에 착수하는 등 경수로 건설은 순항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당시 미국 특사의 방북 당시 북한이 고농축우라늄(HEU) 계획을 시인했다는 미국 측 발표가 나오면서 제2차 북핵 위기가 촉발, 북한 경수로 건설 사업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북한의 핵 개발 의혹은 그렇지 않아도 대북 경수로 제공에 부정적이었던 미국 공화당 정권의 '경수로 건설 철회론'에 힘을 실어주는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결국 2002년 11월 KEDO는 제네바합의에 따른 미국의 대북 중유공급을 중단하고 경수로 사업도 재검토하기로 결정했고, 북한은 이에 반발해 핵 동결 해제를 선언한 뒤 이듬해인 2003년 1월 NPT 탈퇴를 선언했습니다.

이후 북한 경수로 사업은 2003년 11월 1년간의 공사중단이 선언됐고, 2004년 11월 공사중단 조치가 재차 1년간 연장됐다가 결국 2006년 6월 공식 종료됐습니다.

이러한 우여곡절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북한은 2005년 9·19공동성명 때도 경수로 제공을 끈질기게 요구, 공동성명에 '적당한 시점에서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하는 문제를 논의키로 합의했다'는 문구를 포함시켜 경수로 지원의 길을 터두었습니다.

북한 원전 건설은 전력난 타개가 시급한 북한의 수요와 맞아떨어지며 비핵화를 견인할 협상카드로 거론돼왔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남아있지만, 실제 추진을 위해서는 대북제재 등으로 인해 한미 간 합의가 필요한 것이 현실입니다.

특히 한국형 경수로는 미국이 원천 기술을 가지고 있어 한국 정부가 독자적으로 해외지원건설을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디지털뉴스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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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링크 : [북핵신고] 개발부터 냉각탑 폭파까지

 

▲1953.3 = 북, 소련과 원자력 평화적 이용 협정 체결
 
▲1962. = 북, 영변에 원자력 연구소 설치

▲1963.6 = 북, 소형 연구용 원자로 IRT-2000 소련으로부터 도입

▲1974.9 = 북, 국제원자력기구(IAEA) 가입

▲1985.12.12 = 북, 핵비확산조약(NPT) 가입

▲1993.3.12 = 북, NPT탈퇴 선언(제1차 북핵 위기)

▲1994.6.13 = 북, IAEA 탈퇴선언문 제출

▲1994.10.21 =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문 서명

▲1994.11.1 = 북, 핵 활동 동결 선언

▲1995.12.15 = 북-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경수로 공급 협정 체결

▲1997.7.28 = KEDO, 금호사무소 개설 및 부지 공사 착수

▲1999.5.18~24 = 미, 금창리 방문단 현장 방문(핵시설과 무관 결론)

▲2002.10.3~5 = 제임스 켈리 미 대통령 특사 방북, “북한이 우라늄농축 시인” 주장

▲2002.10.17 = 미 “북, 핵무기 개발 계획 추진” 발표(제2차 북핵 위기)

▲2002.11.14 = KEDO, 대북 중유지원 중단

▲2002.12.12∼21 = 북, 핵동결 해제 조치들(영변 원자로 봉인 제거 및 감시카메라 작동 중지, IAEA 사찰관 철수) 개시

▲2003.1.10 = 북, 정부성명 통해 NPT 탈퇴

▲2003.4.23∼25 = 북.미.중, 베이징서 북핵 3자회담 개최

▲2003.8.27∼29 = 제1차 북핵 6자회담 베이징서 개최

▲2003.11.21 = KEDO, 대북 경수로 사업 12월1일부터 1년간 중단 결정

▲2005.2.10 = 북, 핵무기 보유 선언

▲2005.5.11 = 북, 영변 5MW 원자로에서 폐연료봉 8천개 인출 완료 발표

▲2005.9.16 = 미 재무부, 마카오의 방코 델타 아시아(BDA)에 대한 제재발표로 북한에 대한 간접 금융제재 단행

▲2005.9.17 = BDA, 북한 회사들과 업무거래 잠정 정지

▲2005.9.19 = 제4차 2단계 6자회담에서 북한의 모든 핵무기와 현존 핵 계획의 포기 등 6개항 공동성명 채택

▲2005.11.9~11 = 제5차 1단계 6자회담서 ‘공약 대 공약’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른 공동성명 이행 의장성명 채택

▲2006.1.18 = 북.미.중 6자회담 수석대표 베이징서 회동, 북, “선(先) 금융제제 해제”요구. 미, 기존입장 고수

▲2006.3.7 = 북.미, 금융문제 논의 위한 실무 접촉

▲2006.6.1 = 북 외무성, 미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 초청. 미국은 거부

▲2006.7.5 = 북, 대포동 2호 등 미사일 실험.

▲2006.7.16 = 유엔 안보리, 대북 미사일 결의(제1695호) 만장일치로 처리. 북은 즉각 거부

▲2006.9.9 = 스튜어트 레비 미 재무부 차관, 미국기업연구소(AEI) 주최 세미나에서 “중국 등 세계 약 24개 금융기관이 자발적으로 대북 거래 중단” 주장

▲2006.10.3 = 북, 핵실험 계획 발표

▲2006.10.9 = 북, 핵실험 실시 언론 통해 발표

▲2006.10.15 = 유엔 안보리, 유엔헌장 7조 의거 대북 제재 결의

▲2006.10.17 = 북 외무성, 안보리 결의에 “미 동향 주시하며 해당조치 취해 나갈 것” 반발

▲2006.12.20~22 = 미, 6자회담 제5차 2단계 회의에서 북에 ‘핵폐기-상응조치’ 수정안 제시. 북은 방코 델타 아시아(BDA)문제의 선결 원칙 고수

▲2007.1.16~18 = 북미, 베를린서 김계관 부상과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간 양자회담서 BDA문제 해결 합의

▲2007.2.13 = 6자회담 제5차 3단계 회의에서 비핵화 1단계 조치인 ‘2.13 합의문’ 채택

▲2007.3.13~14 =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IAEA 사무총장 방북

▲2007.3.19 = 북, 동결된 BDA 자금을 문제삼아 제6차 6자회담 수석대표회의 불참

▲2007.6.21~22 = 힐 차관보 방북. 북, 영변 원자로의 빠른 시일내 폐쇄 의사 표명

▲2007.6.25 = 북 외무성, BDA 동결자금의 북한 계좌로 송금 확인

▲2007.6.26~30 = IAEA 실무단 방북, 2.13 합의에 따른 핵시설의 폐쇄.검증 문제 등 협의

▲2007.7.15 = 북 외무성, 중유 5만t 도착을 확인하고 영변 핵시설 가동 중단 발표

▲2007.9.1~2 = 북미, 제네바서 북미 관계정상화 실무그룹 2차 회의 열고 핵시설의 연내 불능화와 전면 신고에 합의

▲2007.9.11~15 = 미.중.러 ‘북핵 불능화 기술팀’ 방북

▲2007.9.18 = 북 외무성 ‘北-시리아 핵협력’ 의혹 부인

▲2007.10.3 = 베이징 제6차 6자회담 2단계 회의서 비핵화 2단계 조치 합의

▲2007.11.1~5 = 미 불능화팀 방북, 불능화 조치 착수

▲2007.11.19~20 = 북.미, 뉴욕서 금융실무 회의

▲2007.11.27~29 = 6자회담 당국자 등 ‘북핵 불능화 실사단’ 영변 방문

▲2007.12.3~5 = 방북 힐 차관보,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앞 친서 전달

▲2008.1.4 = 북 외무성 “美에 수입알루미늄관 이용 군사시설 참관시켰다” 발표

▲2008.2.19 = 김계관 부상-힐 차관보, 베이징 양자회동서 핵신고 논의

▲2008.3.13~14 = 김계관 부상-힐 차관보, 제네바 양자회동서 핵신고 논의. 힐 “신고 형식엔 유연 대처”

▲2008.4.8 = 김계관 부상-힐 차관보, 싱가포르 회담서 핵신고서 내용 잠정 합의

▲2008.5.8~10 = 성 김 미 국무부 한국과장 방북, 핵신고 협의. 북, 영변 원자로의 가동일지를 미측에 전달

▲2008.6.26 = 북, 플루토늄 생산량 등을 적시한 핵 신고서를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에 제출. 미, 대북 테러지원국 지정의 해제 절차 착수

▲2008.6.27(예정) = 북, 영변원자로 냉각탑 폭파. 미 CNN 등 6자회담 5개국 언론사 초청해 생중계/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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