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에서 150여 년 전 존재한 대형 화장실 흔적이 발견됐습니다. 이 화장실은 현대와 유사한 정화시설을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돼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대형 화장실 유구( 遺構:옛날 토목건축의 구조와 양식을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자취)가 발견된 장소는 경복궁 동궁 남쪽 지역입니다. 궁궐 내부에서 화장실 유구가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문화재청은 이 시설이 현대 정화조와 유사한 시설을 갖춘 대형 화장실 유구라고 설명했습니다.
■ 화장실은 언제 만들어졌나?
문화재청은 '경복궁 영건일기'의 기록과 가속 질량분석기(AMS)를 이용한 절대연대 분석, 토양층의 선후 관계 등으로 볼 때 이 화장실이 경복궁 중건 당시인 1868년쯤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후 20여 년간 사용했을 것이라는 게 문화재청의 추정입니다 .
화장실이 발굴된 동궁 권역의 건물들은 1868년(고종 5년)에 완공됐지만, 일제가 1915년, 조선 전역의 물품을 수집ㆍ전시한 박람회인 조선물산공진회를 개최한다며 경복궁 전각을 헐면서 크게 훼손됐습니다. 화장실 또한 그 시기 멸실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 화장실이라는 사실 어떻게 확인했나?
문화재청은 이번에 발굴된 유구가 화장실이라는 사실은 '경복궁 배치도'와 '궁궐지'의 기록으로 알 수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경복궁 배치도는 1888~1890년경 경복궁의 배치를 그린 그림이고, 궁궐지는 1904년 경복궁의 전각 칸 수와 용도를 설명한 기록입니다.
문화재청은 화장실 유구의 위치가 '문기수직소'로도 불린 문기수청 동쪽으로, 경복궁 배치도에 나타난 문기수청 동쪽 용도를 알 수 없는 5칸 건물이 화장실 유적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궁궐지에는 "통장청 동쪽에는 문기수청이 있는데, 10칸이며 화장실은 4칸이다. 지금(1904년)은 없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유구의 토양에서 검출된 다량의 기생충 알과 오이, 가지 들깨 씨앗 또한 이곳이 화장실이었음을 입증하는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토양에서는 회충과 편충 같은 기생충 알이 g당 18,200건 확인됐습니다.
■ 화장실의 구조는?
화장실은 길이 10.4m, 너비 1.4m, 깊이 1.8m의 좁고 긴 네모꼴의 석조로 된 구덩이 형태입니다. 분뇨가 구덩이 밖으로 스며 나가는 것을 막도록 바닥부터 벽면까지 모두 돌로 돼 있습니다.
정화시설 내부로 물이 들어오는 입수구(入水口)가 1개, 물이 나가는 출수구(出水口)가 2개 있는데, 북쪽 입수구의 높이가 출수구보다 낮습니다. 유입된 물은 화장실에 있는 분변과 섞이면서 분변을 빨리 발효시키고 부피를 줄여 바닥에 가라앉히는 기능을 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문화재청은 "분변에 섞여 있는 오수는 변에서 분리돼 정화수와 함께 출수구를 통해 궁궐 밖으로 배출됐고, 이렇게 발효된 분뇨는 악취가 줄어들 뿐 아니라 독소가 빠져서 비료로 사용할 수 있었는데, 이 구조는 현대식 정화조의 구조와 유사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문화재청이 발굴 결과를 토대로 재현한 화장실의 모습은 아래 영상과 같습니다.
■ 화장실은 누가 어떻게 사용했을까?
화장실 유구가 발견된 장소는 경복궁 내에서 동궁 관련 하급 관리와 궁녀, 군인들이 상주하던 곳이기에 이들이 주로 화장실을 이용했을 것으로 문화재청은 추정하고 있습니다.
문헌 자료에 따르면 화장실은 칸막이로 나뉘어져 한 번에 최대 10명이 이용할 수 있는 규모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정화시설 전체 용적은 16.22㎥로 1인당 1일 분뇨량을 고려하면 하루 150여 명이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이는 배수 시설이 없는 화장실에 비해 약 5배 정도 많습니다.
■ "현대식 정화시설과 흡사…월등히 발달된 기술"
이장훈 한국생활악취연구소 소장은 150여 년 전에 정화시설을 갖춘 경복궁의 대형 화장실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이 같은 분뇨 정화시설은 우리나라에만 있으며, 유럽과 일본의 경우에는 분뇨를 포함한 모든 생활하수를 함께 처리하는 시설이 19세기 말에 들어서야 정착됐고 중국의 경우 집마다 분뇨를 저장하는 대형 나무통이 있었다고만 전해질 뿐이라 설명했습니다.
이 소장은 "정화시설은 백제 때 왕궁시설인 전북 익산 왕궁리 유적에서도 확인됐지만, 물을 흘려보내 오염물을 정화시킨 뒤 외부로 배출하는 구조는 이전보다 월등히 발달된 기술"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영상편집: 황혜경
이진성 기자 (e-gija@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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